[바그다드6信]전쟁 공포·경제난에 지친 국민들 종교로 안식 찾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요르단 수도 암만을 오가는 월경(越境)택시 기사 모하메드 바케르 사디크(44)는 바그다드에서 암만까지 가는 10시간 동안 차에서 세번 내렸다. 휴식이 아니라 기도를 위해서였다. 한번은 휴게소에 마련된 기도실을 찾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나머지는 도로변에 자리를 깔고 엎드려 기도를 올렸다.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번 기도하는 살라트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의 기본적 의무지만 세속적 전통이 뿌리 깊은 이라크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점점 더 많은 이라크인들이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찾고 점점 더 많은 여인들이 이슬람 전통 복장인 아바예를 입거나 샤할을 머리에 쓴다. 바그다드 시내에 드물게 있는 주류 판매점에도 외국인을 제외하면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

"걸프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뒤로 진정으로 신을 찾게 됐다"는 사디크는 "금요일 정오가 되면 모스크마다 기도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라고 들려줬다.

바그다드 대학의 이산 알하산 교수(사회학)는 "20여년간 계속된 전쟁에 대한 공포와 경제난에 지친 사람들이 종교에서 정신적·육체적 피난처를 찾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종교에 몰입하기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수니파 무슬림으로 세속 정당인 바트당을 이끌고 있는 그는 지난해부터 바그다드 외곽에 세계 최대의 모스크를 건설하고 있다.

이 모스크는 지난해 완공된 스커드 미사일 모양의 첨탑으로 유명한 움 알마릭(전투의 어머니) 모스크의 5배 규모다.

움 알마릭 모스크에는 후세인 대통령이 3년 동안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16ℓ의 피로 썼다는 6백여쪽의 코란(이슬람 경전)이 유리상자에 모셔져 있다.

물론 후세인이 종교에 매달리는 것은 일반 국민들과 동기부터 다르다. "국민들의 종교적 움직임을 당초 위협으로 인식했던 바트당이 그것을 더욱 장려하고 있는 것은 국민 불만을 해소하고 수니·시아파로 나뉘어 있는 국민 통합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한 서방 외교관의 분석이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종교에 빠져들고 있는 게 오늘날 이라크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라크 국민들이 종교 속으로 피난한다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cielble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