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내 입금 안하면 더 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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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미국 워싱턴 일대 연쇄 저격 사건의 사망자가 10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범인이 "이틀 내에 돈을 은행에 입금시키지 않으면 더 살해하겠다"는 협박 메모를 남긴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이처럼 범인이 화를 내면서 돈을 요구해 경찰은 당황하고, 주민들은 공포에 떠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범인이 "당신의 아이들도 언제 어디서고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메모를 남긴 것으로 밝혀져 많은 학교들이 23일부터 휴교에 들어갔다.

◇1천만달러 내놔라=워싱턴 포스트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9일 밤 총격이 벌어졌던 버지니아 애슐랜드 지역 식당 주차장 주변 숲속에서 범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발견했다.

넉장에 걸쳐 손으로 쓴 이 편지는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으며, "내가 오래전부터 경찰과 수차례 접촉하려 했는데 툭하면 전화교환원이 무시하거나 녹음된 메시지만 나와서 실패했다. 이같은 터무니없는 일처리로 그동안 다섯명이나 더 죽어야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편지에는 "이 때문에 나는 굉장히 화가 나 있다… 월요일까지 지정한 은행계좌에 1천만달러를 입금시켜라"는 문구도 있었으며, 지난 7일 범인이 메릴랜드주 보위 중학교 학생 총격사건 때 타로 카드 위에 남겼던 '나는 신이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경찰은 뭐했나=그동안 인내심을 갖고 수사를 지켜보던 미국 언론과 국민은 범인의 편지 내용이 알려지고, 뒤늦게 경찰이 잇따른 기자회견을 통해 범인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사건이 시작된 지 20여일이 지났는데도 단서조차 잡지 못한 채 엉뚱한 사람들이나 체포하며 범인과 관련한 정보 숨기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협박 내용을 며칠 간이나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몽고메리 카운티의 찰스 무스 서장이 주도하고 있는 수사에 대해서도 '당장 FBI에 넘겨야 한다'는 여론이 80%에 달하고 있다.

◇문닫는 학교들=그동안 워싱턴 일대 학교들은 연쇄 총격 사건 속에서도 체육활동이나 방과 후 프로그램 등 옥외활동을 금지하고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막는 선에서 보안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어린이들에 대한 위협 사실이 알려지자 배리스쿨 등 메릴랜드지역 11개 사립학교들과 버지니아의 체스터필드·헨리코·해너버 등 5개 카운티와 리치먼드 시내 모든 공·사립학교가 23일부터 임시휴교에 들어갔다. 몽고메리 카운티는 관내 학교에 '코드 블루(code blue)'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비상령에 따라 학교의 모든 외부 출입문이 봉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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