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 '호기심 천국'<'Museum Of Se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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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본지에 '이흥우의 연예가 클로즈업'을 연재했던 MBC 이흥우 PD가 최근 미국 뉴욕으로 연수를 떠났다. 이에 따라 8월까지 국내 연예가 중심으로 써왔던 칼럼을 마치고, 대신 그가 뉴욕에서 보고 느끼는 세계 문화의 흐름을 소개하는 칼럼 '이흥우 PD의 뉴욕 통신'을 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나는 호기심에 빠졌어요.(I am curious.)"

앳된 처녀의 궁금증에 가득 찬 표정이 인상적인 포스터를 만난 곳은 맨해튼 5번 애버뉴 27 스트리트에 자리한 뉴욕의 새로운 명소 '모섹스(MoSex·Museum Of Sex)'다. 우여곡절 끝에 예정보다 늦은 지난 5일 개관한 '성(性)박물관'이다.

국경일인 '콜럼버스 데이'에 모섹스가 위치한 5번 애버뉴의 44번부터 70번 스트리트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퍼레이드들을 따라가며 구경하던 중 빨간색의 이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건물 입구로 가자 '호텔 거슈윈'이라 써 있었다. 거슈유윈이 작곡한 '서머타임'처럼 끈적거리는 외관으로 치장된 호텔 옆에 있는, 작은 규모의 현대미술관 같은 건물이 바로 '모섹스'였다.

'18세 이상만 입장 가능' '촬영시 카메라 압수' 등 주의 문구들이 붙은 하얀 벽면이 손님을 맞는 첫인사다. 5층 건물 중 두 개 층이 전시장이다. 1층 입구에 걸린 개관 기념전 주제가 묵직하다.

'뉴욕시가 미국의 섹스문화·산업을 어떻게 변형시켜 왔는가?'

조금 큰 섹스 숍 정도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갤러리는 상당히 이론적이고 예술적인, 그러면서도 지루해질 만하면 '엽기적인' 기록과 전시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스플레이로 발길을 끌었다.

이야기는 1830년 한 창녀의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과 이를 둘러싼 논란과 기록으로 시작한다. 흑백영화 시절 찍은 19세기 뉴욕 사창가 침대 위의 누드쇼가 눈길을 끈다. 돈을 받고 여성에게 자신의 근육을 만져보게 한 유진 샌도라는 보디빌더와 관능적인 이집트 배꼽 댄서가 19세기말 풍경을 전해준다.

성병으로 코가 없어진 얼굴 사진, 가학적인 성관계에 사용됐던 수갑과 채찍, 날카로운 낙태도구에 이르면 여성들은 '오 마이 갓(Oh, my god!)'을 연발한다. 19세기 뉴욕의 이면을 훔쳐보다 2층으로 가는 계단에 들어서는데, 대학생인 듯한 연인들이 한 몸이 되어 진한 애정표현을 하다가 화들짝 놀라 떨어진다.

2층 20세기의 성은 좀 활기찼다. 1970년대 후반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빌리지 피플의 '와이엠시에이(YMCA)'와 '마초맨'이 계속 흘러나왔다. 흥행산업으로서의 섹스가 그 역사를 내보이고 있다. '입(入)'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동성애자의 권리 주장, 60년대 여성들의 자학용 성기구 광고, 성전환과 가학적·피학적인 도착(SM: 사디즘-마조히즘), 핫팬츠·하이힐·로프로 유명한 '원더 우먼' 성인만화, 레즈비언들의 얘기를 다룬 펄프 픽션(삼류 소설) 등.

'기록사진, 그 현장'이란 코너는 정말 엽기적인,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위치한 사진으로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옆에 있던 흑인 여자 둘은 계속 '오 마이 갓'을 외치면서도 끊임없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특이한 점은 남자들은 별말 없이 관람하는데, 여자들은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전시품의 대부분은 관장 댄 글룩의 개인 소장품이며, 일부는 성 보고서로 유명한 킨지 연구소와 레즈비언 아카이브 등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부지런히 봐도 2시간은 족히 걸리는 이 갤러리 투어는 81년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으로 마감된다. '41명의 동성애자들에게서 희귀한 암 발견'. 에이즈를 최초로 보도한 공식 자료다. 20세기를 통해 진폭을 넓혀온 욕망의 끝은 이렇듯 천형(天刑)으로 끝나는가 보다. 나름대로 철학을 경험한 문화체험이었다.

문화방송 PD

neoyhw@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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