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주는 고전 명품 '일품요리식' 전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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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고전 작품을 읽혀야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고전이라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요즘 책들을 찾아 읽히기도 힘들고 바쁜데….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그래. 학생 때 고전 작품을 읽어야지 언제 읽겠는가. 인류의 위대한 언어 예술을 맛볼 기회는 역시 감수성이 풍부한 중고등학교 시절이 아닌가. 내 자신을 돌이켜 봐도 고전 작품을 읽은 것은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이었잖아. 비록 그 때의 독서가 난독과 오독의 수준에 불과했지만….

세계의 고전들을 고르고 골라 학생들에게 참신하고 흥미롭게 권하는 일, 이는 분명 독서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줄기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가 기획하여 펴낸 『스칼라 월드 북스』 시리즈(창작시대)는 놀라운 '명품'. 빼어난 삽화와 자세한 해설, 희귀 자료들을 절묘한 편집으로 잘 아우른 다큐멘터리식 구성이 고전의 감동을 한층 깊고 넓게 해 준다.

첫 권으로 나온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만 해도 당시 선박의 종류, 다양한 돛의 모습 등, 관련 자료들이 매 쪽마다 생생하게 담겨 허구와 실제를 넘나드는 독서의 즐거움을 준다(이러한 책들은 모니터 앞에서 잠드는 인터넷 세대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곁들여, 『보물섬』을 읽은 어른들이여, 이 책들을 꼭 읽어 보시라. 완전히 다르다!).

우리도 이런 명품들을 만들 수 있을까? 답은 매우 희망적이다. 최근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기획한 『국어 시간에 고전 읽기』 시리즈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실례. 『춘향전-사랑 사랑 내 사랑아』와 『운영전-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조현설·나라말)은 우리 고전 작품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결실이다. 원본을 충실하게 살려내며 알기 쉽게 한자말과 고어를 풀이하고, 시각적 측면을 강조했다. 특히 여러 도움 장치('정보 꼭지', '춘향전을 읽고 나서-나도 이야기꾼!' 등)들을 덧붙였다. 예고된 『홍길동전』과 『구운몽』『심청전』『유충렬전』 등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와 월드 북스 시리즈를 능가했으면 좋겠다.

『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신병주·노대환, 돌베개)도 눈여겨 보아야 할 책. 소장 역사학자들이 『춘향전』과 『홍길동전』『허생전』과 같이 잘 알려진 작품들은 물론 『설공찬전』『은애전』 등 모두 16편의 고전 소설들을 통해서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정치사·경제사·사상사·생활사를 간결하면서도 흥미있게 담아냈다.

이밖에도 『역사를 추적하는 조선문인 기행』(허시명 글·사진, 오늘의책)이 50여명의 조선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생생하게 더듬어 보게 한다.

어느 정도 고전 읽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옛시 읽기의 즐거움』(김풍기·아침이슬) 등 시 부문으로 독서 범위를 넓혀 보는 것도 좋겠다. 곁들여 외국 문학 작품을 읽고 싶다면 클라시커 시리즈의 50번째 책 『현대소설』(요아힘 숄·해냄)도 적절한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고전을 읽혀야 한다는 구호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고전 읽기의 재미와 의미를 충분히 느끼게끔 알차게 책을 만들면 자연히 읽게 된다. 이미 그러한 가능성은 도처에서 싹 트고 있다. 모두 힘!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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