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핵파문]럼즈펠드 주장은 '플루토늄彈' 지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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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사실이 공개되기 무섭게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다시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해 북한의 핵 보유 여부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17일 "본인은 북한이 소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추가 핵무기 개발도 추진 중"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 증거를 제시한 게 아닌데다 '믿는다(believe)'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이미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주장하는 북한 핵무기 보유설은 북한이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하기 이전인 1990년 전후 시기에 추출한 플루토늄을 이미 핵무기로 전환했다는 내용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 정보 당국은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이 미사일에 실을 수는 없지만 무게 2∼3t의 저급한 수준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은 90년대 초반까지 핵무기의 기폭장치 실험인 70여회의 고성능 폭약 실험(고폭실험)을 했다.

북한은 또 고성능 폭약으로 만든 대형 재래식 탄두를 제작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이 추출해 둔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개발을 계속 추진했다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정교한 플루토늄탄을 90년대 말까지는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무기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정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북한의 핵무기 내지 핵탄두 보유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보여준다. 핵실험을 하지 않고 만든 핵무기는 실제로 폭발하지 않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것과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와 이미 보유한 국가에 달리 대응해 왔다. 그런 점에서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향후 미국의 대북 전략 변화와도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는 민감한 대목이다.

이런 부담 때문에 럼즈펠드 장관이 지난 9월 16일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일본 외상과 회담한 직후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파문이 커지자 미 국방부는 "기존의 정보 당국 평가와 같은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바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안성규 기자

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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