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뜻 맞으면 과거 안따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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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과거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뜻이 맞으면 과거사가 문제될 게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14일 저녁 악연을 맺은 인사들과의 관계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기자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다.

李후보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의원, 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대표, 민국당 김윤환(金潤煥)대표 등과의 관계개선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과거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뜻만 맞으면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李후보의 말은 일종의 레토릭(수사·修辭)일 수 있다. 李후보 측도 "질문에 대한 원론적 답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한나라당이 노골적으로 세(勢)불리기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李후보는 이완구·전용학 의원 입당에 대해 "우리와 뜻을 같이한다며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적극 옹호했다. "그들이 과거에 우리 당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입당을 막는다면 또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의원 빼내오기는 안된다""16대 총선 민의를 왜곡해선 안된다"고 하던 李후보의 생각이 '당세 확장을 위해선 과거를 불문(不問)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인제·박근혜 의원을 데려오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을 입당시킬 경우 대세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李의원에 대해선 2단계 접근법이 거론된다. 민주당 내 그의 계보의원들을 먼저 입당시킨 다음 그들의 힘을 빌려 李의원을 당긴다는 전략이다. 李의원 계보로 분류됐던 田의원의 입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 입당설이 도는 민주당의 H·P·L의원도 충청·수도권 출신으로 李의원과 가깝다.

JP와 허주(虛舟·김윤환 대표 아호)의 경우는 좀 다르다. 李후보가 두 사람과 손을 잡는 모양새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15일 "정당의 당수인 두 사람과 접촉을 하면 자연스럽게 지분 이야기가 오갈 것이고, 그같은 상황은 李후보에게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이미지에도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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