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본래 잘났다?" 동과 서 담론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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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총·대포의 등장 이전 인류 최강의 군사력은 유목민들의 기마 군단이었다. 영화 '벤허'에 등장하던 로마의 전차 군단은 잊어버리자. 여러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전장을 휩쓸던 막강 기동력의 전차 군단은 고대 로마의 정치 제도만이 운용할 수 있었던 전투 집단이라서 로마 멸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와 달리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의 기마 군단은 인류가 건설한 최대의 땅덩어리를 자랑하던 13세기 팍스 몽골리카를 상징하는 군사력이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인 투르크·몽골의 유목민들이 비옥한 땅의 북중국, 옥토 위에 건설한 키예프 등 농경 문명사회와 유럽 대륙까지 압도한 수수께끼는 그 때문이다. 공포의 기동력과 파괴력을 가진 이들을 멈추게할 수 있었던 것은 화약과 총포로 무장한 포병 부대의 출현 뿐이었다.

이런 얘기는 올해 나온 책 중 동서 문명사에 관한 훌륭한 입문서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사계절)에 나오는 정보인데, 다음은 이 책 공저자인 박한제(서울대 동양사학과)교수의 말이다. "서구 무기발달의 역사는 유목민과 동방국가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과정이었다". 이 분야의 고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김호동 등 옮김,사계절,1998)의 저자 르네 그루세도 그렇게 말한다. 총·대포의 출현이야말로 세계사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대사건이라고.

바꿔 말하면 16세기 이전까지 군사 주도권은 유라시아 쪽이 쥐고 있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근대 직전 서양은 대포의 야전용 무기 개발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본래 성벽 뚫기 전용의 무기였던 대포에 '발'을 장착시킨 겨우 불과 3백여년 전인 17세기 후반. 그건 15세기 중반 대포를 전함에 장착시키는 획기적인 기술 진보까지를 이룬 뒤였다. 이제 야전과 대양은 그들의 앞마당으로 변했고, 그 결과 세계 제패가 비로소 가능했다.

난데없는 무기 얘기는 지난주 나온전쟁 역사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야심만만한 저술 『살륙과 전쟁』(푸른 숲) 때문이다. 지당한 얘기지만 전투와 전쟁이란 것에는 법과 종교가 포함된 문화적 양상으로 규정하는 이 책은 근대 서양이 패권을 쥔 이유까지를 분석해놓고 있는데, 그 논리가 동양의 입장에서 보면 영 거북하다. 이 책을 옮긴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양은 원래가 잘났다"는 얘기로 시종한다.

개인과 조직의 창의성, 무기 사용과 전술의 유연성 등이야말로 서구적 가치인데, 바로 이런 것들이 서양이 벌인 전쟁 수행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 그런 이유로 서양이 비(非)서구를 누른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예고됐던 승리"라는 식의 주장이다. 하도 태연자약하게 목소리를 높이니 우리 입장에서는 급한대로 정수일 번역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창작과 비평사,2001)를 인용해야 할 판이다.

14세기 당시 최대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유럽은 여행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반(半)문명 지역에 불과하고, 기독교도들 역시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것을 자인했다고 언명하고 있지 않던가.『유라시아 천년을 가다』의 공저자인 서울대 최갑수 교수(서양사)의 말도 그렇다.

서양은 중세만 해도 지중해 문명의 변방에 불과했다. 그런 서양이 지구촌 강자로 등장한 것이야말로 지난 천년의 최대 사건이라고까지 야유 섞인 발언을 했다.(27쪽)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글쎄다. 그건 '담론의 전쟁'이라고 봐야 한다. 동과 서는 지금 역사학의 공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승산은 단연 서양 쪽이다. 근대의 인문사회과학 자체가 유럽 중심주의의 신(神)이 거처하는 신전이라는 점도 충분히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학문을 하면할수록 "본래부터 서구는 잘났다"는 결론에 이를 확률이 높게 돼 있다. 어이없는 논리라고 여기지 말고 다음 최갑수 교수의 진단을 경청해보며 오늘의 화두 '무기와 전쟁, 그리고 동서 문화'를 마무리하자.

"유럽 중심주의를 극복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학문 편제의 패러다임 자체이고 보면 사정은 만만치 않다. 서양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대 세계 체제는 분과 학문 체제라는 영역을 상부구조로 지님으로써 논리와 명분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근대 대학에 뿌리를 내린 이 분과 학문 체제는 형성 과정에서 서구 중심주의를 그대로 확대재생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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