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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마인드'없이 지구 앞날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신문사)으로 한국 사회를 불편하게 했던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교수는 오슬로로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도 그 쓴 소리 하는 버릇을 잊지 않았다.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라는 부제가 붙은 후속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가 그것이다. 그들의 열린 사회에 대한 칭송도 마다하지 않지만, 환경 문제만큼은 물음표를 단다.

자전거를 타고 공장 굴뚝 없는 거리를 누비는 선진 시민들의 공산품 생산 기지는 어디냐는 것이다. 한반도에 황사를 몰아다 주는 중국과, 유럽과 가까운 아프리카로 공장을 옮긴 것이라면, 노르웨이 기업이 아프리카 등지에 환경오염 개선을 위한 정책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힐난이다. 부자 나라의 탐욕을 꼬집은 것은 박교수가 처음은 아니다. 메아리 없는 나 홀로 목소리가 번거로웠을까.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의 저자인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웬델 베리(68)는 강도높은 처방을 내렸다.

"미국인들은 인간 쓰레기가 됐으며, 우리는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야 한다"고. 그는 생산자 기업이 아닌, 물건을 쓰고 버리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쓰레기 문제도 생산자 잘못만이 아니라 탐욕의 공생관계와, 게으르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소비생활 탓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영문학자이자 시인이면서 켄터키 강가에서 전통 농법을 고집하며 농사짓는 꼬장꼬장한 농부다. 석탄을 캐내 산하를 망치고 바다에 기름을 유출시키는 전력 산업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낮에만 글을 쓰고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글쟁이다. 21세기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인 그는 1956년산 로열 스탠더드 타자기가 집필 도구다.

'What are people for?'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뿐 아니라 40여권의 에세이를 펴냈으며, 논쟁을 일으키는 환경론자로 꼽히고 있다. 그의 책에 따라붙는 독자 서평은 "당신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내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인정한다"로 시작된다. 자급자족을 종용하고 대규모 생산업과 절연하라는 그의 발언이 과격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증거다. 반면 비판적 독자보다 전적인 동조자 수가 적은 까닭은 독설의 글쓰기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지식 노동자, 일년에 한번 이상 패스트푸드를 사먹은 사람들을 죄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베리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특히 올 1,2월 『녹색평론』에 9·11테러 이후 벌어지는 평화라는 명목의 전쟁에 대해 꼬집은 글이 특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본업인 환경운동의 핵심 저작으로 90년에 쓰인 이 책이 가장 먼저 번역됐다.

그러나 글의 공격성 때문인지 같은 땅 버몬트주의 친환경론자인 『아름다운 삶,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의 공저자 부부인 스콧 니어링·헬렌 니어링같은 편안함은 찾기 힘들다. 그가 보는 농촌에는 소로의 월든 호숫가 같은 낭만도 없다. 베리가 본 농촌은 젊은이들이 도시의 꼬드김에 빠져 농촌을 떠나고, 그들을 대신한 대형 농장업자들은 생산성만을 부르짖으며 땅을 혹사시키고 있다.

따라서 농촌 재생은 지역공동체가 나서서 이웃 간의 규범과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일깨워야 가능하다고 베리는 보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농촌공동체를 꿈꾸는 서울대 출신의 대구지방 농사꾼 천규석의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게 진보다』(실천문학사)가 베리의 노선과 비슷하다 하겠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와도 닮은꼴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기에 에너지 위기 문제를 거론해온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는 베리를 유나바머같은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자로 분류한다. 유나바머가 거대 자본과 산업 기술을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비난하며 과격한 행동으로 신념을 표현했다면, 베리는 글을 통해 저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전력과 컴퓨터 사용을 거부하는 그가 "글 쓰는 행위에 자연을 약탈하는 행위가 포함돼 있다면, 어떻게 양심적으로 자연 파괴에 반대하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라고 밝히는 부분에서 그런 비타협의 자세를 감지할 수 있다.

베리는 대규모 환경운동에 대해서도 독설을 토한다. 그동안 환경운동은 자연에 기생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수백만 인간과 자연 군락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지구를 보존하자는 거대한 희망보다 모든 가정과 모든 마을을 보존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운동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수입과 수출을 전제로 한 생산농업을 거부한 프랑스 농부 앙드레 포숑의 『분노의 대지』(울력)도 출간됐다. 오염된 먹거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생태 농업의 귀중함을 알리는 책이다. 수확의 계절, 두 농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적절한 때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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