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출신 정선혜·장소연·양숙경, 심판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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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심판에 도전하는 전 여자배구 국가대표 3인방. 왼쪽부터 정선혜.양숙경.장소연.

여자배구 흥국생명과 KT&G의 연습경기가 열린 지난 8일 경기도 용인시 흥국생명 연수원 체육관. 경기 직전 KT&G 공격수 최광희가 지난해까지 대표팀 동료였던 새내기 심판 장소연(31)에게 "잘 봐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코트 안에 들어가면 공하고 라인만 봐. 넌 안 보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흥국생명 라이트 황연주의 후위공격(백어택)이 수비 손에 맞고 아웃되자 정선혜(30.윗 사진) 선심이 터치아웃을 선언했다.

장소연.양숙경(28)은 선수 배번을 확인하며 기록지를 적어 나갔다. 세트가 바뀌자 역할을 바꿨다. 이들의 정확하고도 절도 있는 움직임을 지켜보던 한국배구연맹(KOVO)의 김건태 심판위원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 잘한다."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코트를 누볐던 세 공격수가 심판복을 입었다. 각각 2003년 3월(정선혜.전 LG정유 레프트), 지난해 4월(양숙경.전 흥국생명 레프트), 12월(장소연.전 현대건설 센터) 코트를 떠난 이들은 지난해 12월 프로배구 전임심판에 도전했다. 신생팀 창단도, 남자 신인 드래프트도 무산된 프로배구에 생기를 불어넣을 스타 출신 새내기 심판이다.

선수에서 심판으로. 코트에 서는 기분이 어떻게 다른가 물었다. 세 사람은 약속한 듯 "모르고 덤볐던 시절이 부끄럽다"고 했다.

"선수 시절에는 주.부심이 같은 일을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심은 네트터치.센터라인 오버 등 5가지 반칙만 보는 거래요. 부심한테 왜 오버네트를 지적하지 않느냐 항의하곤 했는데. 몰라서 용감했던 거죠."(장소연)

"밖에서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코트 안에 들어오니까 잘 보이지 않아요. 라인에 신경 쓰면 터치아웃을 못보고, 터치아웃에 신경 쓰면 라인을 못 봐요."(정선혜)

"선수 시절에는 심판이 편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심판은 고독하죠."(양숙경)

심판을 천직으로 삼을 건지 물었다. 양숙경이 "국제대회 가보면 한국 심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까지 도전하겠다"며 의욕을 보인다. 그러나 장소연.정선혜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프로배구는 심판감독관이 심판을 평가하는 FIVB시스템을 도입, 이를 토대로 재계약과 연봉을 결정한다. 아마 시절에는 없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스타플레이어의 심판 도전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심판 역시 실력으로 말하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인=장혜수 기자

◆정선혜=1990년대 LG정유의 주포로, 팀을 6차례나 수퍼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명실상부한 에이스였지만 잦은 부상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28세)에 선수생활을 접었다.

◆장소연=1998년 SK케미컬이 해체된 뒤 현대건설로 옮겨와 팀의 수퍼리그(V-투어 포함) 5연패를 이끌었다. 빠른 발을 이용한 이동공격이 전매특허였다.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한 뒤에도 대표팀에 복귀해 한국의 올림픽 본선 3회 연속 진출에 기여했다.

◆양숙경=대표팀에서는 백업멤버였지만 오랫동안 흥국생명의 주장을 맡았으며 경기당 20점 안팎의 높은 득점력을 자랑했다. 지난해 팀 내 불화로 유니폼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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