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전문 인력 양성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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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베리아는 세계 육지의 10분의 1이나 되는 거대한 땅이다. 특히 극동 시베리아 지역은 한국·중국·몽골이 접경해 있는 아시아 땅이다. 과거 황무지나 유배지로 주로 인식되다가 제국주의 시대에 자원의 보고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 땅이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시베리아 철도를 한반도 철도와 연결시키는 계획뿐 아니라 산업 원료가 되는 각종 지하자원과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의 최대 공급지로서 시베리아가 부상하면서 세계가 이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고 있는 시베리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너무나 근시안적이고 몰역사적이며 정치·산업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해 장기적 국가 전략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과거 시베리아에 널리 퍼진 민족은 북방 몽골로이드 또는 고아시아족이며 한민족도 이에 속한다. 유·무형의 유물과 전래 민속·언어 등 문화의 원류가 한반도와 시베리아에 공유돼 있다. 특히 두만강 건너에 위치한 러시아 시베리아·극동은 발해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과 끊임없이 연루된 곳으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다.

종족적 민족 의미가 퇴색하는 21세기에 유라시아 국가를 꿈꾸는 러시아는 아시아계 원주민과 이웃 국민과의 공생적 관계 속에 시베리아·극동에 유라시아 복합 문화권을 도모할 수도 있다. 대륙과 한반도를 철길로 연결하려는 구상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푸틴 정부의 전략에는 이러한 문화·역사적 고려도 작용했다고 본다.

최근 문화인류학자들은 선사시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 주류 한민족의 북방 기원설에 큰 관심과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이 지역 원주민과 한국·몽골·일본 민족과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도 유전학적·인류학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동안 일부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런 풍조 속에서 요즘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이 약간 일자 각처에서 연구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베리아를 산업·정치적 시각으로만 보려 하지 민족사적·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폭넓은 고찰엔 관심이 없다. 학술 연구 지원도 이런 시류에 편승한 쪽으로 돌려지려는 경향마저 일고 있다. 백년을 내다보아야 할 국가의 인재 육성에 대한 비전의 부재 속에 신진 전문 연구자들의 역량과 지혜가 신자유주의 시장 원리에 의해 사장되고, 반대로 기성의 비전문가들이 활발한 로비력과 인맥을 통해 각 부문을 다시 독점해가는 듯하다.

한·소 수교를 전후해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반짝 일자 너도 나도 러시아 전문가로 자처하다 소련 해체 후 관심이 식으며 다른 태도를 보이던 일부의 모습도 다시 보는 듯하다.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 유행으로 그쳐서도 안되고 국가의 지원도 근시안적으로 진행돼서는 안된다. 21세기 한민족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장기적 비전 속에서 이 지역에 대한 종합적이고 기초적인 연구와 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조사는 전문성을 갖추고 현지 사정에 정통한 연구자의 육성과 참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기초 학문의 육성을 위한 지원도 그렇게 폭넓은 시각과 장기 전략적 고려 아래 전문성을 판단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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