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도 난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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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나라 안팎으로 악재가 쏟아져 경제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시중에 자금이 넘치고 가계대출은 위험 수준이다. 부동산은 버블(거품)로 치닫고 있고 물가도 불안하다. 주가도 속락하고 있다.

자금시장의 불안은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소비심리가 위축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의 불확실성으로 기업 설비투자는 계속 부진하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전쟁 가능성에다 미국 경제의 불안, 유가 급등 등이 겹치면서 세계 경제의 앞날이 어둡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2%선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박승(朴昇)한국은행 총재는 25일 경제 전문가들과의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미국-이라크 긴장, 과잉 유동성, 가계대출 과다, 부동산 급등, 주가 하락, 달러가치 상승 등 경제 불안 요인이 혼재돼 있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돈이 너무 풀렸다=경제성장률만 따지면 우리 경제의 모습은 괜찮아 보인다. 지난해 3%의 저성장에서 벗어나 상반기에 6.1%나 성장했고,하반기에도 6%대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성장의 질이 문제다. 투자와 수출에 힘입은 성장이 아니라 돈을 풀어 만들어낸 성장이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를 지속한 결과 통화 증가율(M3 기준)은 지난해 9.6%에서 지난 6월 13.5%까지 치솟았다.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부동산 값이 치솟았다.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은 지난해 말 68조8천억원에서 지난 6월 말 90조원까지 늘었다. 물가도 불안하다.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에 불안요인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증시·실물경제 불안=대내외 악재가 겹쳐 종합주가지수는 25일 연중 최저치인 657.96으로 마감했다. 코스닥 지수도 사흘째 급락해 지난해 9월 이후 1년만에 50선이 붕괴됐다.

경제를 받쳐온 내수시장에도 이상기류가 보인다. 이번 추석대목에 백화점 매출은 약 10% 상승하는 데 그쳤다. 6개월 후 경기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 기대지수도 8월에 106.2로 두달째 하락, 소비심리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지난 5월 4.8% 증가해 살아나는 듯했으나 6월 이후 다시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수출이 하반기 들어 두자릿수 증가를 지속하고 있으나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국제 유가 급등=우리 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 24일 전날보다 0.66달러 오른 배럴당 27.64달러를 기록했다. 22개월 만에 최고치다. 올 들어서만 10달러나 올랐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도 이날 한 때 배럴당 31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석유공사는 미국-이라크 전쟁이 6개월 가량 장기화할 경우 두바이유가 배럴당 30∼35달러까지 오르고 전쟁이 확대되면 40달러대까지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딜레마에 빠진 정부=당초 정부는 상반기에 3%대 성장을 예상했으나 내수가 기대 이상으로 활황세를 타면서 6.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지만 미적거리는 바람에 정책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너무 늘어 이제 와서 금리를 올리면 가계 파산이 우려된다"며 "미국도 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데다 대외 여건이 불안해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은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고현곤·이수호 기자

hk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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