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문제 떠들썩한데 무기사찰은 누가 왜…유엔이 핵무기등 막으려고 하는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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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청와대에 외국 조사단이 들어와서 위험한 무기를 개발하는지 조사하겠다며 대통령 책상까지 샅샅이 뒤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지금 이라크가 그런 상황이랍니다. 무기사찰은 무엇이고, 누가 왜 하는 것인지, 이라크는 왜 무기사찰 압력을 받고 있는 건지, 무기사찰에 얽힌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는 어떤 건지 알아보도록 해요.

편집자

1.무기사찰은 누가 무슨 근거로 하는 건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여러 나라들은 핵폭탄이나 독가스와 같은 무서운 무기를 줄여나가자는 국제적인 약속을 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2발에 9만여명이 죽는 것을 보고 핵폭탄 같은 대량살상무기(WMD)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엔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화학무기금지조약(CWC) 등을 체결해 핵폭탄이나 독가스를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이런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지 철저히 조사·감시하는 것이 바로 무기사찰이에요.

세계 각국은 유엔을 창설할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무기사찰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놨어요. '안보리는 세계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군비 규제의 일차적 책임을 진다'는 유엔 헌장 24,26조가 이것입니다.

무기사찰은 유엔 안보리의 위임을 받아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같은 전문기구가 실시하기도 하고, 국제평화가 특별히 위협받는다고 판단할 경우 안보리가 직접 지시해 별도 기구를 통해 사찰활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2.그러면 어떤 나라들이 무기사찰을 받나요.

물론 국제적인 약속을 어기고 몰래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숨겨 놓거나, 외부에 파는 나라들과 아예 조약에 가입조차 않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나라들이 대상입니다.

대량살상무기를 줄이는 데 가장 적극적인 미국은 이런 의혹이 있는 나라들을 '불량국가'라고 비난해 왔어요. 올해 초부터는 이 중 이라크와 북한·이란 세 나라만을 지목해서 '악의 축'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북한은 IAEA가 집중적으로 사찰하고 있는 나라예요. 1993년 영변의 핵시설을 조사하겠다는 IAEA의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자 안보리는 핵무기 사찰을 수용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어요.

이라크에 대해서는 91년 안보리의 결의로 무기사찰이 시작됐어요. 안보리는 결의안에서 이라크만을 전담해서 대량살상무기를 사찰하는 특별기구까지 만들도록 했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몰래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 안보리가 규탄성명만 내고 만 것과 비교하면 강도가 훨씬 센 셈입니다.

3.이라크가 문제가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화학무기를 실제로 사용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국경을 맞댄 이란과 81년부터 8년간 전쟁을 했어요. 이때 피부에 물집을 일으키거나 신경을 마비시켜 죽게 하는 겨자가스와 사린이라는 화학무기를 이란군에 썼습니다. 이로 인해 4만4천여명이 죽었다는 것이 이란측 주장입니다.

88년 이라크 북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화학무기를 써서 무자비하게 진압했지요. 이라크가 또다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 유엔 안보리는 무기사찰을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라크는 90년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 때도 탄저균 같은 생물무기를 탑재한 폭탄을 만들어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4.강대국들이 가진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는 왜 문제삼지 않나요.

대표적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는 물론 미국입니다. 그러나 이라크의 화학무기는 문제가 돼도 미국의 핵무기는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입니다.

예컨대 핵무기 개발을 금지한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무기가 없는 나라는 더 이상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면서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처럼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에 핵무기를 팔거나 핵무기 개발기술을 알려주지 말라는 제한만 하고 있어요.

무기사찰을 결정하는 안보리는 강대국들의 힘을 현실로 인정한 대표적인 조직입니다. 1백90개 유엔 회원국 중 안보리의 결정을 내리는 국가(상임이사국)는 핵무기 보유가 공인된 5대 강국 뿐입니다. 이 중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안보리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어요. 이들 나라가 자청하지 않는 한 이들에 대한 무기사찰은 할 수 없다는 얘기죠.

이처럼 무기사찰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강대국들의 대량살상무기를 드러내 놓고 문제삼지는 않고 있어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 강대국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일단은 이를 지키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5.이라크는 최근 무기사찰을 받겠다고 선언했는데 왜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거죠.

미국은 이라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98년 유엔 사찰단을 쫓아낸 뒤 계속 사찰을 거부해 오다 미국이 공격하겠다고 하자 '시간벌기' 차원에서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미국은 그 근거로 이라크 내 화학무기 생산공장으로 의심되는 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과 함께 화학무기와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라크 과학자들의 증언을 제시하고 있어요.

유엔 사찰단도 이라크에서 철수한 직후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없앴다는 이라크 정부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보고서를 냈어요. 따라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후세인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지 않는 한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라크가 실제로 개발한 대량살상무기의 사진과 같은 직접 물증은 아직 없습니다.

미국이 무기사찰을 구실로 미국에 대해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라크를 손보려 한다고 이라크가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랍니다.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의 원유를 마음대로 퍼가기 위해 그곳에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하고 있지요.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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