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情院 정치개입 여전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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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가정보원이 제16대 총선에 개입한 의혹을 담은 두개 문건이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공개됐다. 문건 존재 자체에 대한 국정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크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치 불관여를 높이 천명하고 조직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바꾸는 등 요란을 떨었지만 실상은 안 그랬던 탓이다. 金대통령 취임 몇달 뒤 튀어나온 국정원 보고자료는 그 분명한 증거였다. 국정원이 진승현 게이트의 장본인인 陳씨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2차장이 민주당 권노갑 고문에게까지 수시 보고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일반 국민마저 국정원의 악습을 기정 사실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역분석시 참고사항''선거구 단위 영향력 기업인 발굴보고'라는 두 문건은 단순한 민심동향 파악을 넘어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현재 후보가 경쟁력이 없을 경우 제3의 인물을 추천하라는 등의 지시가 의미하는 바는 뻔하지 않은가. 2000년 총선 전 현 정권에 대한 낮은 지지율 만회를 위해 여권의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국정원장이던 천용택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2차장 휘하의 간부에게서 입수한 자료라며 사실임을 증명할 추가자료가 있다고 장담한다.

두 당사자의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라도 엄정한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국정원도 무작정 출처 불명의 문건이라며 유감만 표시할 게 아니다. 국정원 내 한 부서에서 내밀히 이뤄졌을 여지 등 모든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국정원으로서는 혹시 있었을지 모를 정치개입 사례를 규명함으로써 실추된 명예회복은 물론 다가온 대선에서의 정치 불개입 의지를 확인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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