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세금부담 너무 무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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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인당 세금 3백만원을 전제로 짜인 정부의 내년 예산안은 일종의 '청구서'다. 현 정부가 지난 5년간 외환위기 극복이나 햇볕정책, 복지 확대 등으로 거둔 성과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추경 포함)보다 1.9% 늘어난 1백11조7천억원의 내년 예산안이 최근 10여년래 가장 빠듯한 규모라는 점을 은근히 내세우고 있다. 예산 부족액을 메우기 위한 적자 국채 발행을 중단해 '균형 예산'을 달성하게 됐다는 점은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출 예산이 빠듯했던 이유는 정부가 특별히 긴축해서라기보다 쓸 돈에 비해 들어올 돈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살림 규모를 줄여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적자 국채 발행 중단도 내년부터 본격화하는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 부담을 예산에서 떼내 별도의 기금으로 넘긴 덕분이어서 균형 재정으로 보기도 어렵다.

국민 입장에서는 내년 세입 예산이 훨씬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 전망치(8.5%)보다 높은 9.9%로 잡았다. 근로소득세 증가율(4.8%)을 낮춰 잡은 대신 부가세(10.9%)·특소세(20.2%) 등 간접세를 집중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저항이 큰 직접세 대신 간접세 위주로 세입 예산을 늘려 잡았지만 1인당 세금 부담은 3백만원을 넘는다. 1999년 1인당 2백만원을 넘어선 지 4년 만에 절반이 늘어났다.

정부는 내년에는 공기업 주식 매각 같은 세외(稅外)수입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세수를 늘려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소득 증가 속도를 넘어서는 이같은 세입 예산은 국민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을 더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방 교부금이나 공무원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 축소에 성의를 보였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과제들은 정기국회의 몫이다. 대통령선거가 발등에 불이겠지만 민생을 보살피는 국회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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