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뱐카 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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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폴란드 출신의 볼셰비키 혁명가 펠릭스 제르진스키가 '반혁명과 파괴행위를 다루는 전 러시아 비상위원회(체카)'를 설립한 것은 1917년 12월 7일이었다.

당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완수를 위해서는 반혁명 세력에 대한 테러와 사보타주, 해외첩보 활동 등을 위한 특별기구가 필요하다며 이를 조직하도록 제르진스키에게 명령했다. 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과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신인 체카는 이렇게 탄생했다. 체카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하지만 이곳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체키스트'라 불렸다.

체키스트들의 본부는 모스크바 루뱐카 광장에 있다. 이곳에 소련당국이 체제수호의 공훈을 인정해 조각가 예브게니 브체티흐에게 15t이나 되는 거대한 제르진스키 동상을 만들도록 한 것은 58년이었다. 이후 이곳 루뱐카 광장은 제르진스키의 독무대였으며 KGB의 힘을 상징했다.

이곳에 민주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상징석 '솔로베츠키의 돌'이 세워진 것은 90년이었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당시 민주세력들이 체카가 운영하던 강제노동소 근처에서 큰 돌을 가져와 상징석을 만든 것이다.

이후 91년까지 루뱐카 광장엔 민주세력과 공산세력의 상징물이 공존했다.

하지만 91년 8월 공산당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하고 민주세력들이 제르진스키 동상을 기중기를 동원해 쓰러뜨리면서 두 세력의 상징물이 공존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

한동안 잊혀졌던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다시 화제가된 것은 98년 12월, 러시아 국가두마가 동상 복원을 결정하면서였다. 그러나 이 결정은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이 반대해 집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9월 말 루즈코프 시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루즈코프는 "91년 8월의 상황은 제르진스키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사회질서에 대한 도전행위였을 뿐"이라며 동상복귀를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91년 8월 당시 모스크바 시장이었던 가브릴 포포프가 "제르진스키 동상을 무너뜨리는 데 동원된 기중기는 미국대사관이 제공한 것"이었다는 내용의 비망록을 발간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KGB 출신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에 힘과 규율, 질서를 잡아가는 가운데 마침 올해는 제르진스키 탄생 1백25주년이 되는 해다. 다시 '솔로베츠키의 돌'과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공존하는 시대가 임박한 현재를 역사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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