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위한 '뷰티풀 마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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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걸어다니는 '흉기'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 너무 불안하다."(40대 주부), "정신질환자는 아예 외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30대 여성 회사원)

지난 4일 50대 정신질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어린이 11명이 심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신문사나 인터넷에 쏟아진 격앙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들이다. 그러나 이는 정신질환의 단면만을 본 잘못된 시각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우리 주변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정신질환자 수는 2백73만명(알콜 중독자 제외)에 달한다. 전 국민의 4.7%며, 네다섯 집에 한 집꼴로 정신질환자인 가족이 있는 것이다.

환청·피해망상 등 증상이 상대적으로 심각한 정신분열증 환자만도 17만6천명이나 된다.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정은기 박사는 "정신질환 환자들을 가둬야 한다는 발상은 극히 후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질환 전문치료 병원이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게 현실이라고 개탄한다.

정신질환자나 가족에게 가장 아픈 사회적 편견은 '정신질환=범죄'라는 근거 없는 등식이다. 그러나 2000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백인호 교수는 "사회의 기능은 정신질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치료·재활을 도와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사건을 일으킨 환자도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몇 달째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게 하려면 약값·진료비 등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정신질환은 대부분 만성질환인 데다 환자의 65%가 의료보호 대상일 만큼 오랜 병치레로 경제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미 3년 전부터 정신분열증 환자가 복용해온 약인 '자이프렉사'를 2차 약(한달 이상 다른 약을 써본 뒤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을 때만 건강보험 혜택)으로 돌린 것은 환자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단적인 예다.

인하대병원 정신과 김철응 교수는 "약값 부담뿐 아니라 약의 모양·색깔만 바뀌어도 약을 먹지 않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특성도 이번 조치에서 고려되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신분열증 환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를 한국에서 탄생시키려면 그의 부인·친구가 가졌던 '뷰티풀 마인드'를 전체 사회가 공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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