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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춘추전국시대 <하> 아이폰 잡아라, 토종들의 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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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기술과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서비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결정체인 갤럭시S가 예상을 웃도는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갤럭시S 내수 판매 50만 대 돌파 소식이 전해진 26일 오후 서울 중구 일대 SK텔레콤 대리점들을 둘러봤다. “갤럭시S를 사고 싶다”고 하니까 대부분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하니 예약하라”고 했다. 이 밖에도 애플 아이폰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 OS 전선의 LG전자·팬택 등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이 속속 첨단 스마트폰 신제품으로 대박을 노린다. 아이폰4의 국내 출시가 당초 예정보다 미뤄진 것도 내수시장의 토종 스마트폰 약진에 호기가 되고 있다.

아이폰이 뒤늦게 국내에 상륙한 지난해 11월 말 이후 우리나라는 한동안 ‘아이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블랙베리·모토로이·디자이어 같은 외국산 스마트폰도 국내 시장을 공략했지만 삼성 옴니아2를 빼면 이렇다 할 대항마를 내지 못했다. 휴대전화 강국으로서 업계와 소비자 모두 실망이 컸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번 여름 갤럭시S를 내놓으며 일류 스마트폰 대열에 진입했고, LG전자와 팬택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불과 6개월여 만에 ‘스마트폰의 신화’ 아이폰에 대적할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답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2008년 이미 도전의 싹을 키우기 시작했다. 갤럭시S 개발에 깊숙이 간여한 조정섭 SK텔레콤 MD(모바일디바이스)본부장 등을 통해 ‘갤럭시S 스토리’를 구성해 봤다.

# SS1~SS2 프로젝트  첫 국산 스마트폰 ‘옴니아’

2008년 2월.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임원 10여 명이 머리를 맞댔다. ‘애플 아이폰이 몰고 올 충격에 대비하라.’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2007년 6월 미국 등지에 출시된 아이폰에 대적할 스마트폰을 만드는 일이었다. 한국은 ‘피처폰’으로 불리는 일반폰 분야에선 국제적으로 선전을 거듭했지만 스마트폰은 불모지일 때였다. 전무급 임원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기로 했다. 삼성과 SK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SS팀’으로 명명했다. ‘SS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스마트폰은 피처폰과는 전혀 다른 기기였다. 소트프웨어(SW)와 네트워크 운용 구조 면에서 전화기라기보다 PC에 가까웠다. 일단 기기를 만들어 놓으면 있는 그대로 쓰는 게 피처폰이라면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원하는 SW를 선택해서 제대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과연 제대로 된 스마트폰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회의론이 쏟아져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OS)인 윈도 모바일을 채택했지만 원래 PC용으로 만들어진 윈도는 스마폰에서 잘 돌아가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그해 11월 옴니아1을 내놨다. 모든 걸 할 수 있는 손 안의 PC라는 뜻에서 ‘옴니아’라고 작명해 광고홍보에 나섰다.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CEO)도 옴니아1을 보려고 일부러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듬해인 2009년 3월부터 ‘SS2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옴니아1보다 진일보한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8개월 뒤인 10월 옴니아2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 직후인 11월 한국에 상륙한 ‘아이폰’이 바람몰이를 하면서 옴니아 시리즈가 선풍을 일으키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반응 속도가 느리고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 부족한 데 대한 고객 불만이 쏟아졌다.

# SS3 프로젝트  갤럭시S의 탄생

갤럭시S의 국내 공개 행사가 열린 지난달 8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에서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왼쪽부터),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이 갤럭시S를 들어보이고 있다. 세 회사는 애플 아이폰에 맞서 갤럭시S를 글로벌 전략 스마트폰으로 키우는 데 긴밀히 협력해 왔다. [중앙포토]

올 1월. 다시 한자리에 모인 SS팀. 이대론 안 된다는 위기감에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앞날을 걱정하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비등했다. “더 늦으면 아이폰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데 뜻을 모았다. 윈도 모바일 대신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한 전혀 다른 스마트폰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폰의 SW 경쟁력에 맞설 카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라고 판단했다. 세 번째 도전인 ‘SS3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TF의 규모를 확대해 양사 임원 15명과 실무자 25명 등 책임자급 40명이 참여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쉽사리 출시할 수 없었다.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애초 아이폰에 역부족이었다. 양사 품질팀뿐 아니라 일반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신종 기기를 서둘러 써보는 고객)까지 고용해 수십 차례 제품을 점검했다.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고치고 또 고쳤다.

근래 아이폰4를 곤경에 빠뜨린 수신안테나 문제는 갤럭시S에도 난제였다. 본체를 최대한 얇게 가져가다 보니 안테나를 넣을 공간이 잘 나오지 않았다. 금융서비스(T캐시) SW를 넣으려면 더욱 불가능했다. 결국 뒷면 커버에 안테나를 넣고 T캐시를 빼기로 했다. 대신 나중에 T캐시 칩이 들어 있는 케이스를 무료로 나눠주는 것으로 절충했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로고였다. “회사 로고를 뺄 수 있느냐”는 의견이 무성했지만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결국 양사가 모두 뺐다. SK텔레콤의 ‘T’도, 삼성의 ‘애니콜’도 없앴다.

지난달 8일 국내 제품 공개 행사를 했다. 안드로이드 OS를 만든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을 초청했다. 그는 “내가 아는 안드로이드폰 가운데 최고”라고 치하했다. 국내 공식 출시일은 아이폰 미국 출시일인 24일(현지시간)에 맞춰 25일로 잡았다. 미국에는 지난 15일 현지 통신회사 T-모바일을 통해 ‘바이브런트’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 SS3 프로젝트  2.0 아이폰의 ‘대항마’

갤럭시S는 한국 출시 엿새 만에 10만 명이 개통했다. 그 나흘 뒤엔 두 배인 20만 명으로 늘었다. 26일 출시 33일 만에 50만 대가 개통해 신기록을 세웠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한 달 전 미국 공개 행사에서 “갤럭시S를 이른 시일 안에 1000만 대 팔겠다”고 했을 때 국내외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유수의 스마트폰과 어깨를 겨눌 만한 성능을 보여줬다는 외신 평가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애플 아이폰4의 수신불량 문제가 불거진 것도 상황에 큰 변수가 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칼럼니스트 월터 모스버스는 ‘갤럭시S가 아이폰4와 라이벌이 될 자격이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갤럭시S를 써보니 아이폰 못지않다’고 평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도 갤럭시S가 스마트폰 가운데 화면이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엔가젯’ 등 유명 블로거 사이트도 아이폰4와 갤럭시S의 비교 체험기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까다로운 전문가층 사이에서도 “적어도 하드웨어 면에선 아이폰4에 버금가는 수준에 올랐다”는 평이 나온다. 애플리케이션(앱)의 온라인 장터인 앱스토어 경쟁력에서 안드로이드앱이 아이폰 앱보다 뒤진다는 점은 넘어야 할 과제다. 아이폰이 26만 여개의 앱을 활용할 수 있는데 비해 안드로이드는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SS팀은 현재진형형이다. 다음달 1일부터 ‘T캐시’ 칩이 내장된 휴대전화 케이스를 무상 지급할 예정이다. SW 업그레이드도 준비 중이다.

◆특별취재팀=이원호·심재우·박혜민·문병주 기자·이경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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