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 초미니팀… "기적 일궜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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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공포의 야탑구단-.

지난주 막을 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11명의 선수로 구성된 초미니 야구단이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하고 8강까지 진출한 것이다.

중앙고에 8대1로 앞서다 아쉽게 8대9 한점 차로 져 4강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패배의 아쉬움보다는 '해냈다'는 기쁨이 가득했다.

기적을 일군 이들은 경기도 분당의 야탑고등학교 야구단. 1997년 창단됐다. 이 선수단에는 다른 학교와는 달리 3학년이 2명밖에 없어 성과가 더욱 놀랍다.

인원이 워낙 적기 때문에 선수들 모두 둘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했다. 투수가 1루수를 보기도 하고 마스크를 쓰던 포수가 외야로 나가기도 한다. 2학년 김정한 선수는 투수·2루수·유격수·3루수 네 개의 포지션을 자유자재로 오가기도 했다.

선수가 30명이 넘는 다른 학교 야구부는 두 팀으로 나눠 연습경기를 갖곤 하지만 야탑고에서는 연습 때 공·수가 따로 없다. 타순이 돌아오지 않는 선수는 돌아가며 수비에 나서고 필요할 경우 감독과 코치도 선수로 나선다. 연습경기 중 주자가 만루인 상황이 되면 모든 선수들과 감독 등이 그라운드에 서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의 부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김성용(33)감독이 평소에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안 다쳤느냐"다.

金감독은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선수들을 위해 배운 수지침과 부항 실력이 거의 한의사 수준"이라고 말했다.

선수의 숫자는 모자라지만 이들은 끈끈한 단결력으로 뭉쳐있다. 선수단 숙소에는 선후배 간의 엄격한 위계질서보다는 형과 아우 간의 형제애가 넘쳐 흐른다.

운동선수들 간에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체벌이나 구타는 찾아볼 수 없다. 청소나 음료수 당번과 같은 잡일도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예외 없이 순서대로 돌아간다.

야탑고 야구부는 창단한 지 5년이 됐으나 이번 봉황대기 전까지의 전국대회 성적은 1회전 탈락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 겨울 45일 간의 혹독한 합숙훈련을 거치면서 새로운 팀으로 거듭났다.

전국의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선수들은 타이어 끌기, 목봉체조 등 지옥훈련으로 몸을 단련했다.

어린 선수들은 힘이 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이러한 훈련을 통해 선수들은 무쇠같은 체력과 강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야탑고의 목표는 전국대회 우승컵을 안는 일이다. 야탑고 이사회도 학교를 빛낸 야구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야탑고 야구부는 앞으로 우수한 신입생들을 스카우트하고 다른 학교 선수들을 받아들여 모자라는 인원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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