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경록 전 육참총장]"내 탓이오"했던 청렴한 공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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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일 밤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최경록(崔慶祿·예비역 중장)씨는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주영·주일·주멕시코 대사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고인은 우리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켜가지는 못했으나, 청빈하게 살아 공직자로서 모범을 보였다. 고인이 교통부장관으로 있을 때를 비롯해 오랫동안 비서실장을 지낸 최승렬(崔昇烈·65)씨는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평생을 올곧게 사신 진정한 공직자"라며 애도했다.

1920년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전쟁 때 11연대장으로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8사단장·육군사관학교장·참모차장을 거쳐 60년 8월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의 육군 참모총장 시절은 길지 않았다. 견제 세력이 정군(整軍)운동을 적극 추진하던 그와 장도영(張都暎) 당시 2군사령관의 보직을 맞바꿨기 때문이다. 참 군인으로서의 길만을 고집한 그에게 결정적으로 먹구름이 낀 것은 2군사령관 시절이다. 박정희(朴正熙) 당시 2군 부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소장파 군인들이 5·16을 일으키자 고인은 "군인은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면서 그들의 반대편에 섰다.

결국 그는 5·16 직후 사실상 강제로 전역당한 뒤 미국 망명 길에 올랐다. 하지만 "조국 근대화에 동참해 달라"는 朴전대통령의 집요한 설득에 67년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멕시코 대사로 부임했다. 74년 영국 대사를 마친 그는 교통부장관에 취임해 다양한 선진 교통정책을 우리 현실에 접목하려고 애썼다. 집 한채 밖에 없는 그의 청렴한 생활은 교통부장관 시절에도 계속된다.

이를 지켜본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회장 등은 그를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번번이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77년 11월 이리역 폭발사건이 터지자 사표를 냈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철도청장이 책임질 사안이라며 만류했으나 그는 "높은 사람이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며 끝내 사표를 냈다. 이에 국회는 그에게 '장관 사퇴 연설'기회를 주었다. 국회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崔전 장관은 그 후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으로 80년부터 5년 간 주일 대사를 지낸 뒤 공직생활을 접고 여생을 조용히 지냈다. 을지무공 훈장 등과 미국의 '리전 오브 메리트',일본 서실(瑞實)1등 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론 부인 전자순(74)씨와 치훈(47)씨 등 2남 1녀가 있다. 장례는 4일 오후 2시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치른다. 031-725-6061.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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