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파리보다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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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계 미국인 존 믹슨이 1906년에 쓴 미래공상 픽션 '1975년 서울 방문기'(A visit to Seoul in 1975)가 발견됐다. 해당 글은 '코리아 리뷰' 1906년 4월호에 실린 10쪽 정도 분량이다. 목원대 김정동(건축학과)교수는 3일 이같이 밝히면서 자신이 근대사적 의미를 주석으로 달아가며 번역한 글을 4일 발매될 월간 '건축인 포아'(9월호)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믹슨이 1905년 무렵 한국을 방문한 후 남긴 것인데 1945년께 우리나라가 일제 억압에서 벗어나 1975년 입헌 군주국 체제를 갖추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글은 1975년 6월 어느 날 아침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 역에서 시작하고 있다. "밝은 놋쇠 단추를 단 제복을 입은 사람이 손에 메가폰을 들고 커다란 대리석 계단 앞에 나타나, '모두 10시30분발 서울행 급행을 타십시오. 이 기차는 대구·대전·수원·영등포에서만 정거합니다'고 외쳤다. 물론 이 말은 한국어로 말해졌다. 해질 무렵 기차는 서울의 남대문 정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글에서 믹슨이 여장을 푼 곳은 8층짜리 그랜드 호텔이었다. 이 대목에서 김정동 교수의 설명이 재미있다. "1905년께 서울에는 외국 공사관과 손탁호텔 등 서양식 건물이 막 들어설 즈음이었다. 믹슨은 아마 일본의 개항장 요코하마에 들렀을 때 그곳 2층짜리 그랜드 호텔에 숙박하며 그 이름을 픽션에다 적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60년대 서울 남대문 인근에 그랜드호텔이 있었던 점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바로 흥국생명이 2000년 신문로에 사옥을 지어 옮기기 전까지 쓰던 곳으로 건물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을 아름다운 도시로 상상하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시내는 런던이나 뉴욕만큼 크고 붐비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파리보다 더 아름다웠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모든 도로, 깨끗이 청소된 거리, 넓은 돌을 깐 보도, 윤곽이 뚜렷하게 늘어선 빌딩의 줄(중략) 이 모두는 예술적인 동양의 매력을 지닌 듯했다."

청계천과 서울 성벽 얘기는 이렇게 그려진다. "공원거리를 따라 내려갔다. 여기는 마치 미와 자연이 세세하고 화려하게 재창조된 듯 싶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 거리는 원래 커다란 개천(the great ditch)이었지만 지금은 현대의 하수시설 체계 덕분에 이렇게 외부가 꾸며졌다고 들었다.(중략)성벽은 대부분 녹색 담쟁이 덩굴로 덮여 있었다."

믹슨이 연이어 묘사하는 서울은 호텔·살롱·주점 설치가 엄격히 제한된 금욕의 도시였다. 기독교가 국교인 관계로 서울에선 도박·절도·살인이 사라졌다. 대신 3개 대학에 1만명 가량의 대학생이 등록해 공부하고 있으며 장서가 1백만권 이상인 국립도서관 등도 세워져 있었다. 마지막 부분의 글은 이렇다. "내 생각으로는 이 나라보다 더 문명화한 나라도 없고, 물질적·정신적으로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Land of the Morning Calm)'보다 앞선 국민은 없는 것 같다."

이와 관련, 김교수는 "이 글은 1906년에 69년 뒤의 서울을 상상해 쓴 글이라는 점에서 1975년 발견됐더라면 의미를 더했을 것"이라고 전제,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울의 도심을 파리보다 더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 도시정비에 반성 자료로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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