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읽는다]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짝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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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외 지음
소나무, 508쪽, 2만5000원

21세기 들어 소프트파워(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우리 외교의 주안점은 정무와 안보분야에 국한되어 있었고 1990년대 들어 경제와 통상이 우리 외교의 중요한 한 축으로 부상했다면, 21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문화가 우리 외교력의 세 번째 축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올 2월 외교통상부가 발간한 『문화외교 매뉴얼』 서문에 실린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의 서문이다. 이렇듯 21세기 외교력의 세 중심축은 정무·경제·문화다.
하지만 한국 문화의 속을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이 중국의 그것과 겹치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중국 문화가 동양 문화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 문화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아야 그 차별되는 부분을 외교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한국학 전문가 사이에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도그마에 갖혀 중국 문화의 요소를 무시하고 우리 것만 부각시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한국 문화는 중국의 ‘짝퉁’과 고유한 것 그 중간에 위치한다. 문제는 그 좌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에는 적지 않는 품과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갈증을 풀고자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를 비롯해 국내 소장파 학자 9명이 한데 모여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인가?』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은 복식, 음식, 건축, 자기, 음악, 민속, 언어, 종교를 소재로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어떤 ‘변주(變奏)’를 이뤄 냈는지 파헤쳤다.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복식이다. 바지, 저고리, 외투인 포(袍)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기본 복식은 크게 다섯번 변화를 겪었다. 1차는 신라의 삼국통일 당시 당풍(唐風)의 유입, 2차는 고려말 원(元)나라의 몽고풍 유행, 3차는 조선시대 유교가 국교화되면서 명나라 예복을 받아들인 것, 4차는 임진·병자란을 기점으로 두드러진 한국화, 5차는 양복을 도입한 개화기였다. 간략히 말하면 한국인의 옷가지는 중국의 영향을 꾸준히 받았다. 물론 북방 유목 민족 및 중앙아시아, 서양의 영향도 받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 우리의 정서와 상황에 맞게 한국적 정체성을 지닌 옷가지, 즉 한복(韓服)으로 재창조되었다. 단, 저자는 한복의 현재와 미래가 여러 요인으로 인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드라마 대장금의 유행으로 중국에서 한국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 두유, 김치를 놓고는 한·중 사이에 원조논쟁이 붙기도 했다. 중국과 비교한 한국의 먹거리 변천사를 보자. 신석기 중기에 쌀이 중국을 통해 전래됐고, 철기시대에는 된장찌개가 등장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를 거치며 대륙과 먹거리의 교류가 잦아졌다. 조선시대에는 입식문화인 중국과 좌식문화인 한국의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토속적인 한국 음식이 완성됐다. 중국과 다른 한국의 식문화는 밥짓기에서 잘 드러난다. 사신으로 중국에 갔던 조선시대 김창업의 기록이다. “마침 나이 어린 동자승 하나가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가마솥에 당미(唐米)를 넣고 한바탕 끓이더니, 솥을 기울여서 물을 따라낸 뒤에, 다시 쌀을 질그릇으로 덮어서 공기가 새지 않게 하였다. 가마솥 위에는 대자리를 덮고 불을 때다가 조금 뒤에 여니 밥이 되었다.” 한국식 밥짓기인 취반(炊飯)과 다른 중국식 제탕(除湯)법이다. 밥짓는 방식부터 중국과 한국은 달랐다. 필자는 한중간 먹거리 문화의 차이를 이렇게 결론짓는다. “중국 문화의 위세 가운데서도 우리 조상들은 슬기로움으로 우리의 음식 문화를 지켜왔다”고.
조상들의 건축에서 중국 문화의 변용도 흥미롭다. 물론 규범으로서의 건축 문화는 중국에서 도입됐다. 한옥은 생각보다 늦게 정립됐다. 한옥이란 말은 대한제국 시기 정동 길 주변을 기록한 문서에서 처음 보인다. 온돌방과 나란히 붙은 부엌의 구성과 좌우에 온돌방을 거느린 마루의 구성이 결합된 한옥은 조선 중기 이후 한국 주거 건축의 기본형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건축을 연구한 이강민 박사는 의미 심장한 제언을 던진다. 중국 건축의 규범을 받아들인 후 한옥이 성립하기까지 천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중국 건축이 아닌 서양 건축의 홍수 속에서 현대 건축과 한옥의 접점을 찾는 ‘제2의 한옥’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도자기, 음악, 민속의례, 언어,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한 중국의 문화 파워를 자양분으로 삼아 슬기롭게 ‘재창조’했다는 것이 요지다. 이 과정에서 공통된 점이 하나 있다. 중국문화에 경도된 상류층과는 달리 한국적 상황에 맞춰 살아가던 일반 민초들이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엔진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문화 우위의 시대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바로 일반 서민들의 보통 삶 속에 서양 문화를 녹여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에너지가 있다는 점이다.
서두에 이야기 했듯 바야흐로 소프트 파워의 시대다. 특히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 아닌가?”라고 외국인이 물어올 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으려면 우리 것과 남의 것, 특히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지금보다 더 깊이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다만 다양성이 있을 뿐이다. 동양의 공통된 문화가 대중국 외교의 자양분이 아니라 번번히 분쟁의 씨앗이 되는 사례가 잦다. 이 책의 일독이 필요한 이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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