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혁, 개방 김정일의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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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의 개혁·개방 행보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경의선·동해선 연내 연결을 통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비무장지대(DMZ)의 남북 관통에 합의한 30일 북·일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됐다.2년 전 남북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다.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은 사건·사고에 휘둘렸던 남북 관계를 반석 위에 올려 놓고 북·일 정상회담은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북한이 지난달 실시한 물가인상·급여인상의 경제개선 조치는 시장경제와의 접목 실험이라는 평가다. 북한의 움직임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이제 워싱턴만 남았다." 한반도발(發) 깜짝 뉴스가 쏟아진 30일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합의로 확고해진 평양-서울간 화해·협력의 고리가 도쿄(東京)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대외 개방 행보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라며 "아마 북한 관리들 스스로도 놀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북한의 개방조치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다. 북한 군부가 휴전선의 북상(北上)이라며 반발했던 비무장지대를 관통키로 한 경추위 합의는 빗장을 연 북한을 상징한다. 철도 연결이 남북간만이 아니라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단절 구간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유럽·중국·러시아와 한국·일본간 정거장이요, 교차로다. 동서를 오가는 물류가 북한을 통과하는 상황이 가시권에 접어든 것이다.

개성공단(총부지 면적 2천만평) 조성 또한 폐쇄국가의 구각을 깨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의 1백여개 업체가 입주하게 되면 향후 10년 동안 50만명의 북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파급효과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그것도 최전방인 개성에 공단을 조성하는 결단을 내렸다.

외교 지평 확대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일 정상회담은 양국간 북·일 국교 정상화의 길을 여는 동시에 북한이 일본의 과거보상에 따라 거액의 경제개발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뿐만 아니다. 북·일간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청산되면서 역내 질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의 대일관계 정상화 의지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향해 문을 두드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다음달 중순 미국을 방문해 미·일 정상회담을 여는 것도 고려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 7월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때 북·미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북한의 한·미·일 3국에 대한 적극적 외교행보는 전통적 우방인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 복원한 데 따른 자신감과도 맞물려 있다는 풀이다. 여기에 경제 발전을 향후 10년의 국가목표로 내건 중국의 한반도 안정에 대한 요구와 TKR-TSR 연결을 동방진출의 고리로 보는 러시아의 적극적 대북 개입정책도 무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의 대외개방은 최근 일련의 국내 경제개선 조치와 맞물려 있다는 풀이다. 생필품값과 임금을 인상하면서 공급량을 늘리지 않으면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만큼 대외개방을 통해 자금과 물자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계획경제의 부분수정과 대외개방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고유환(북한학) 동국대 교수는 "북한의 최근 행보는 과거의 부분적인 개혁·개방과는 선을 긋는 것으로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북한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새 사상·이론을 곧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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