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과세 기준부터 손질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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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부가 얻은 금융소득과 임대소득 등 자산소득을 합쳐 과세해 온 현행 소득세법 제61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헌재 결정 전날 정부가 내놓았던 올해 세제 개편안의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소득세법의 부부 합산 과세 제도는 부부 재산을 따로 관리하는 민법상의 부부 별산(別算)원칙에 어긋나는 법리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더욱이 혼인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헌법정신에 어긋나 독일·일본 등에서 이미 폐지된 제도다. 헌재 결정이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물려야 한다는 국민 정서나 1974년 이후 부부 소득을 합산 과세해 온 납세 관행 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헌재가 헌법 정신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은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관련 소득세법을 어떻게 고칠 것이냐는 점이다. 국민은 이번 헌재 결정을 이해하면서도 자산소득이 많은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줄어드는 결과까지 용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정 여건이 어려워 세금을 더 거두는 쪽으로 세제 개편안을 낸 정부도 3조원 가량 되는 종합소득세 세수를 축낼 형편이 못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 부부의 자산소득을 합산해 종합 과세하는 기준인 4천만원을 세수에 영향이 없도록 하향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부부 간에 절세를 위한 재산 분할이 크게 늘어날 것인 만큼 상속·증여세 손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권 막바지에 소득세처럼 민감한 세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국회 역시 제대로 심의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세수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세법을 손질할 것을 권한다. 대신 새 정부가 누진체계나 세율은 물론 일부 선진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단일세율 제도 도입 등에 관해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쳐 근본적인 개편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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