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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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에서도 투명성이 화두로 등장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였고, 그 핵심은 투명성이었다. 그 사이 사회 각 부문은 이 기준에 다가서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정치권만은 예외였다. 그들은 개혁을 완강히 거부한 채 어둠의 지대로 남고자 했다. 그런데 정치권에도 투명성이라는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그 계기가 바로 인사청문회제도의 도입이었다.

지난 6월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후 우리는 두 차례의 총리인사청문회에서 두 지명자가 모두 혹독한 검증을 거쳐 인준획득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인사청문회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투명성이 그 답이다. 스스로 삼가면서 투명하게 살아온 사람은 어렵잖게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청문회가 전국민, 특히 고위 공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준 교육효과는 상당하다. 현재 인사청문회 대상은 국무총리,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다. 그러나 한나라, 민주 양당 모두 청문회 대상을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금융감독위원장 등으로까지 확대하자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직위를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청렴과 투명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두 번의 청문회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청문회의 내용이 부실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원인은 우선 청문회 준비기간과 청문기간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수개월에 걸쳐 공직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과정이 진행되는데 반해 우리는 고작 일주일 정도의 준비기간과 이틀의 청문회가 있었을 뿐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다. 청문위원들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 국세청 등의 행정기관이 자체 법규를 내세워 협조하지 않은 것도 개선되어야 한다. 공직지명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사청문특위가 필요한 자료에 접근해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보다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제도를 개선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 이 점에서 두 번의 청문회를 부실하게 만든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정치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문회의 강도와 인준여부가 각당의 정략적 판단에 좌우된 바 크기 때문이다. 우선 각당이 인준여부를 자유투표에 맡기지 않고 당론으로 정한 것부터 문제다. 청문회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졌으면 표결은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지 당론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에게 가부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결별하고 '신당'을 만들기로 한 민주당이 도덕적으로 흠이 많은 지명자를 단지 김 대통령이 지명했다는 이유만으로 당론으로 지지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각당의 대선주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한 마디 말이 없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청와대는 다른 총리지명자를 물색해야 하고, 각당은 다음 청문회를 준비해야 한다. 바라건대 정치권은 이 문제로 극한대결로 치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와대는 위헌논란이 있는 총리서리를 성급히 새로 임명하지 말고 일단 절차에 따라 총리 직무대행을 지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검증된 인물을 다음 지명자로 내세우길 바란다. 정치권도 이 사안으로 더 이상 감정싸움을 벌이지 말고 하루 빨리 인사청문회제도를 개선하는데 머리를 모아야 할 것이다.

현정부의 임기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지금 한국 정치는 상당한 위기에 처해있다. 권력을 잡고 싶어하거나 그 언저리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 시점에서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나 집단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다가올 대선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현재를 책임질 줄 아는 정치인이다. 총리 문제도 이 맥락에서 생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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