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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거리간판 작고 예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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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의 간판 문화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크거나 덕지덕지 붙어 있어 도시 미관을 해친다. 간판만 본다면 국내 도시는 확실한 '삼류(三流)'다. 이제 유럽의 도시처럼 간판을 주위 경관과 어울리게 작고 예쁘게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주한 미국인 로리 월리엄스(31)는 "무질서한 간판과 난폭 운전이 서울을 불안한 도시로 여기게 한다"고 지적했다.

권원용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은 "건물에 간판이 붙어있는 게 아니고 간판 속에 건물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선진국은 어떤가. 작곡가 모차르트의 생가(生家)가 있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의 맥도널드 매장. 창문에 'M'자(字)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선팅 간판) 하나만 붙어 있고, 다른 간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의 간판도 마찬가지.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지만 대형간판이나 자극적인 네온사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 교민들은 "간판 규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크기·색깔을 엄격히 통제할 뿐 아니라 때에 따라 간판을 걸기 전에 주민동의서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간판 크기를 과감히 줄이고, 한 업소가 붙일 수 있는 개수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간판이 난립하는 데는 법 규정이 느슨한 탓도 있다.

옥외광고물 관리법에는 간판 크기는 5㎡ 이내로 하고, 업소당 3~4개까지 달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간판 크기과 허용 개수 면에서 선진국은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규제마저 대다수 시민들이 지키질 않는다. 지난 한 해 전국에서 정비된 불법 간판은 무려 3천52만3천여개. 그러나 불량 간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행정자치부 광고물담당 서석환씨는 "전체 간판의 70% 가량이 불법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등이 간판광고에 투입하는 비용은 전체 광고비의 12%대. 비율이 선진국(4% 대)의 세배나 된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간판을 일종의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시·거리별로 특색에 맞게 간판 문화를 만들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배 부산정보대학 사인디자인학과 교수는 "선진국의 거리가 운치있게 느껴지는 것은 멋진 간판 덕이기도 하다"며 "민·관 간판심의위원회를 두어 대형간판의 경우 허가 전에 디자인 등을 사전 감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기찬·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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