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독서감상문대회 길잡이] 자기 생각과 느낌을 옮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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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중앙일보와 서울시 교육청이 공동주최하는 '중앙 독서감상문 대회'가 진행 중이다. 다음달 19일인 감상문 대회 원고 마감을 눈 앞에 둔 지금 어떻게 쓴 감상문이 좋은 글이고 높은 점수를 받을까를 고심해 보자.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는 책 읽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감상문이라는 그릇 안에 담는 방법을 기고했다. '스스로에게 납득되는 솔직한 글을 쓰자'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감상문 작성의 노하우'를 담은 박스 기사를 그 옆에 붙였다.

편집자

학생들이 독후감을 쓰면, 감상은 별로 못 쓰고 줄거리 요약만 늘어놓기 일쑤다. 지도교사인 나는 답답한 표정으로 '너의 느낌'을 쓰라고 다그친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독서감상문을 쓰는 '공식'은 이렇다. 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 동기를 맨 앞에 적고, 줄거리 요약에 이어 글 끝에 감상을 겨우 덧붙이고 만다. 별 느낌이 살아있지 않은 죽은 글인 것이다. 그 이유는 글 구성에 있다.

액션영화 '쉬리'는 화면이 정신없이 빠르다. 그래야 긴박감이 생긴다. 반면 잔잔한 사랑을 다룬 영화 '봄날은 간다'는 화면이 차분하다. 영화의 흐름이 내용에 따라 달라지듯, 동기-줄거리-감상 순서로 된 '붕어빵' 감상문은 잘못이다. 각자 감상이 다르다면, 글 형식도 달라야 한다. 형식이 한가지라면, 감상이 다양하더라도 글은 다 엇비슷해진다.

즉 자기 감상에 어울리는 글쓰기 형식을 찾는 일이 제대로 된 감상문 쓰기의 출발점이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를 읽었다 하자. 어떤 사람은 어릴 적 이성친구와 뒷동산에 가서 비 맞고 논 경험이 있어서 그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사람은 추억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된다. 그 글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 형태가 되는데, 가슴을 적시는 운치있는 감상문이 될 수 있다.

어떤 여성은 『소나기』가 기분 나쁘다. 도대체 비를 맞고 죽는 여자가 어디에 있는가! 그 여성은 친구에게 묻는다. "야 너희들 아프다고 비 맞고 죽은 여자애 본 적 있어?" 이 여성은 작가가 '여성은 가녀린 존재'라는 편견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 여성은 소나기를 비판하는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면 된다. 주장하는 글 형태가 되는 이 글 역시 좋은 감상문이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는 소나기 주인공과 딴판인 점순이가 나온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려다가 퇴짜를 맞은 이 아이는, 남자아이 집 닭을 괴롭혀서 자기 관심을 표현한다.

이 소설을 읽고는, 연애기법을 따지는 글을 쓸 수 있다. 점순이식 연애방법은 스토커의 방법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자, 상대를 귀찮게 하고 때로 위협하면서 도전한다. 점순이가 사랑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패한 사랑 방법을 따져보고, 성공할 방법을 궁리한 다음, 그 생각과정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면 멋진 독후감이 된다.

독서감상문은 책 첫째 쪽을 펼쳐서 마지막 쪽을 덮을 때까지 생각하고 느낀 것을 재료로 해서 쓰는 글이다. 여기에는 '이렇게만 써야 한다'고 한가지로 정해진 틀이 없다. 자기 감상을 온전히 글로 표현하려면, 글 형식에서 제 멋을 찾아야 한다.

송승훈<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경기 광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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