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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자전거와 오디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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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자전거 주행속도는 평균 20㎞, 하지만 자동차 120㎞보다 즐거움이 훨씬 크다. 그게 절묘하다. 오래 전 격월간지 ‘녹색평론’에서 읽었던 대로 자동차란 ‘자아의 이상(異常)확대’와 관련 있다. 핸들 잡은 운전자가 평소와 다른 공격적 성향으로 변하는 것도 그 때문인데, 자전거에는 그런 게 없다. 늦봄 이후 자전거에 빠진 뒤 새삼 느끼는 게 하나 있다. 자전거·오디오가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야외 레저와 골방 취미라는 외양만 빼면 속성이 완전 붕어빵이다. 입문 초보가 너무도 다양한 모델과 선택 앞에 어리둥절해지는 경험부터 비슷하다. 오디오의 경우 앰프 선택만도 진공관파, TR(트랜지스터)파로 갈라진다.

진공관이라 해도 3극관·5극관이 다르다. 스피커도 풀레인지·정전형에서 빈티지까지 수두룩한데, 자전거도 그에 못지않다. 산악용·로드사이클인가, 중간 형태인 하이브리드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가격도 천양지차다. 자전거의 경우 10만원대 보급형에서 초경량(7㎏) 첨단부품의 기천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실은 오디오야말로 ‘차이·다양함의 원조’가 아닐까? 10만원대 스피커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윌슨오디오·베리티오디오까지 휘황찬란하다. 그래서 오디오족은 남들이 무슨 기기를 쓰나에 관심 많고 정보를 주고 받지만, 자전거맨들은 씽씽 지나가는 남의 차 브랜드와 가격을 곁눈질하기 바쁘다.

흥미롭게도 오디오·자전거는 하이테크 산업이 아니다. 엄연히 로우테크인데, 소재·부품 그리고 디자인에 따라 극과 극이다. 상황이 그러니 오디오족·자전거족은 모두 귀가 얇다. 누가 자기 오디오나 자전거에 문제 있다고 하면, 바로 반응한다. 업그레이드할 생각에 전전긍긍한다. 이 때문에 오디오·자전거 두 세계는 중고시장이 유독 발달했다. 헌것 내놓고 새것 장만하려는 이가 그만큼 많다. 속물 취향이란 비판도 있겠지만, 바꿈질과 업그레이드란 두 세계에서 얻는 즐거움의 하나임을 누가 부인할까?

하지만 두 세계는 같은 점만큼 엄연히 다른 것도 사실이다. 오디오의 경우 매니어 층이 극히 얇다. 세계적으로 20세기 중·후반 전성기를 지난 뒤 조용히 퇴조하는 ‘작은 섬’이다. 반면 자전거는 무섭게 빅뱅 중이며 속성상 대중적이다. 무엇보다 생활레저의 꽃이다. 최소한 내겐 오디오와 자전거는 서로 보완적인 취미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즐기니 더욱 좋다. 지난 주말 한강에 다녀온 뒤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그 중 한 명과 통화하며 말했다. “나, 요즘 자전거교(敎)로 개종했다니까?” 그 여성이 바로 말을 받았다. “음, 나도 개종해볼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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