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총장 견해 차이 검찰 내부 갈등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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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2일 검찰 인사를 둘러싼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영관(朴榮琯)서울지검 특수1부장이 유임된 데 이어 그 책임을 물어 한나라당이 23일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잇따라 악재가 터지면서 검찰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앞으로 사태의 전개 방향에 따라 또 한번의 '검란(檢亂)'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朴부장의 교체 여부를 두고 金법무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 사이에 견해 차가 있었다. 또 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병풍 정치 쟁점화 요청' 발언 이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장남 정연씨 병역 문제 수사를 놓고 일부 중간 간부와 평검사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한 일선 검사는 "이번 사태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의혹이 불거졌던 당시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사건과 견줄 만하다"고 말했다. 당시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수사 연기를 선언했었다.

검찰 간부들은 해임안 제출 이후 사태 추이를 탐색하는 한편 대책을 마련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어 고심하고 있다.

金장관 해임안을 두고 법무부의 일부 간부들은 "정치권이 검찰 인사에까지 개입하려 한다"고 화를 냈다. "이번에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킨 것은 잘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 검사들은 "장관이 검찰 참모들의 건의를 묵살하고 고집을 피운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장관이 화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6개월밖에 안된 수사지휘부인 이범관 서울지검장과 김회선 3차장은 바꾸면서 1년2개월된 朴부장의 유임을 고집할 명분이 없었다는 견해다.

한 중견 검사는 "朴부장 유임도 문제지만 호남 지역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 요직으로 전진 배치된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사 후유증이 예상 외로 심각해 보이는 대목이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고비 때마다 돌출했던 검란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대전법조비리 사건, 옷로비 사건, 파업유도 사건, 이용호·진승현 게이트 등에 검찰 수뇌부나 간부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은 만신창이가 됐고, 그와 맞물려 국민들의 불신도 커졌다.

이에 따라 검찰 일각에서는 이해찬 의원과 朴부장 간의 관계, 李의원이 병풍 요청을 전달해 줬다고 밝힌 제3자가 검찰 인사인지 등에 대해 내부 감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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