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교류 3대 과제]국내 취업문 더 열어 '찬밥 신세' 면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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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베이징에 어엿한 음식점을 낸 조선족 金모 사장은 최근 마음이 편치 않다. 얼마 전 월드컵 축구를 구경하러 한국에 가자는 친구들의 권유를 받고서는 헛기침만 연발했다.한국에서 불법 체류하며 번 돈으로 중국에 돌아와 사업 기반을 다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한국 입국 규제자로 등록돼 있어 다시 한국에 갈 수 없는 탓이다.

"한국에 다시 가서 다른 사업 거리를 찾아보고 싶지만…"

金사장의 말엔 힘이 빠져 있다.그러다 느닷없이 목청을 높여 "한국엔 오라고 해도 안간다"며 등을 돌린다. 한국에 대해 가졌던 기대감이나 동경이 이미 환멸과 배신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조선족을 무시한다. 조선족을 대개 '가정부' 수준으로 본다. 뛰어난 조선족 교수가 있어도 한국 언론들은 찾지 않는다.

한편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이 조선족을 '동포'로 보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조선족은 어엿한 중국의 '공민(公民)'이지 한국의 동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초 '재외 동포법' 개정을 위해 중국에서 현지 조사를 벌이려던 한국 국회의원들이 비자발급 거부로 중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중국의 이런 시각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조선족이 우대받는 것도 아니다. 일개 소수민족으로 대접받으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 사회 모두에서 어정쩡한 이방인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 오기 어렵다. 불법 체류 등으로 사회문제, 고용문제를 일으킬까 걱정하는 한국 정부가 비자 심사를 아주 까다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6만위안(약 9백만원)의 거액을 비자 브로커에게 맡기고 밀입국이나 위장 결혼을 노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10만여명의 조선족 가운데 불법 체류자 수는 6만2천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최소 6만위안의 밀입국 비용을 지불했을 경우 37억위안(약 6천억원)이 밀입국 브로커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 영사관은 영사관대로 한해 20만건을 초과하는 비자 심사로 완전 탈진 상태다.

최근 한가지 해결책이 제시되긴 했다. 식당 종업원·간병인 등 일부 업종에 한해 조선족의 취업을 합법화하자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규모가 미미하다는 데 있다. 철저한 검토를 거쳐 가능한 한 최대한의 규모로 조선족의 취업을 허가하고, 대신 거주 등록과 납세를 통해 이들을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해 봄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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