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싱'中華 미디어 제국'의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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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수퍼맨의 추락인가'.

'초인(超人·수퍼맨)'이라는 별명을 지닌 홍콩 갑부 '리카싱'(사진)이 홍콩 제2의 지역방송 ATV의 지분 인수 계획을 철회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호에서 이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리카싱 소유의 톰닷컴사는 지난달 ATV 지분 3분의 1에 대한 인수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달 뒤인 지난 19일 "ATV에 대한 실사가 불가능하다"며 인수 포기를 발표했다.

갑작스런 인수포기의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자 싱왕 톰닷컴사 대표는 "ATV와 '경영철학'이 맞지 않았다"며 "인수 포기는 철저히 상업적 판단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싱왕이 이처럼 '상업적 이유'를 강조하고 나섰음에도 의구심은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사실 톰닷컴은 ATV 인수 포기 의사를 발표한 바로 그날 ATV가 오래 동안 추진해왔던 광둥(廣東)지역 TV 방송권을 중국 정부로부터 따냈기 때문이다. 광둥 지역 방송권은 ATV에 막대한 광고 수입과 함께 1위 업체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기회를 눈앞에서 버리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리카싱답지 않은 결정이라는 얘기다.

1928년 태어난 리카싱은 탁월한 감각으로 손대는 사업마다 큰 성공을 이뤄내며 확장을 거듭해 중국과 홍콩에선 실패를 모르는 초인으로 불린다.

일부에선 ATV 지분의 46%를 소유한 리우창러와의 갈등 때문에 인수를 포기했다고 관측한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가 리카싱을 가로막았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친중국계인 리카싱에게 적대적인 홍콩 민주당계의 의원들이 리카싱의 계획을 막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리카싱은 홍콩 라디오를 소유하고 있는데 홍콩 법은 라디오와 TV방송을 한꺼번에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리카싱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법개정이 필요하다.그러나 리카싱에게 비우호적인 의원들이 이를 지지할리 없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이번 ATV인수 포기가 리카싱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사업적으로 위험이 큰 중국의 방송업에서 일을 더 벌이기 전에 손을 뗀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리카싱에게 이번 일은 인정하기 싫은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대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소유해 범중화권 미디어 그룹을 건설하겠다는 그의 야망이 차질을 빚게 됐기 때문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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