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자극하는 가을의 앙상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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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브람스'피아노 3중주 제1~2번', 피아노 마리아 조와오 피레스,바이올린 오귀스탱 뒤메이, 첼로 지안 왕(DG).

브람스는 1899년 여름 내내 피아노 3중주 B장조의 개작에 매달렸다. 21세 때 그가 완성한 피아노 트리오 제1번을 35년 만에 손질한 것이다.

원숙기에 다다른 중년의 작곡가의 눈으로 본 이 작품이란 습작단계를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치기(稚氣)로 가득 차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냥 쉽게 흘려 들어도 좋을 2~3악장은 그대로 놔두면서도 비교적 무게가 실린 4악장의 제2주제를 뜯어고쳤다.

1890년대부터 브람스는 교향곡·협주곡 등 대규모 작품을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실내악에만 전념한다. 특히 피아노를 포함하는 작품들은 향수와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가을의 정서로 가득하다.

제1번의 3악장 아다지오나 제 2번의 2악장 안단테 등 느린 악장에서 그 섬세한 내향성이 극치를 이룬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유니즌으로 길고 굵은 선을 그리면 피아노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현악기들이 대화를 나눌 때면 피아노는 두터운 화음으로 음악의 폭과 깊이를 더해준다. 널리 연주되는 브람스의'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고 매료된 사람이라면 다음 곡으로 선택하면 좋을 작품이다.

브람스의'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음반에서 호흡을 맞췄던 피레스-뒤메이 듀오는 중국계 첼리스트 지안 왕을 새로운 파트너로 맞아들여 피아노 3중주 녹음에 도전, 호평을 받았다.

피아노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이유로 튀는 개성을 강조하기 쉬운 피아노 3중주곡이지만 이들 연주자는 마치 처음부터 피아노 3중주로 음악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섬세하고도 긴밀한 앙상블을 빚어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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