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利子 사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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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낙타의 바늘귀 통과보다 어려운 것이 부자의 천당행이고, 그 부자 대열의 선두에 대금업자들이 있다. 이자는 사탄의 유혹이므로 빚쟁이들은 천당이든 이자든 하나만 섬겨야 한다. 말씀은 그랬으나 현실은 딴판이었다. 이자 없이는 땡전 한푼 빌릴 수 없는 것이 세상 인심이었고, 더욱더 큰일로는 교회가 빚쟁이를 천시한 결과 부자 헌금자들이 발을 끊은 것이다. 그래서 교부(敎父) 신학자들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배고픈 사람에게 빌려준 돈에는 이자를 받으면 안되나, 장사할 사람에게 빌려준 돈에는 이자를 받아도 좋다고. 교리와 현실을 절충한 탁견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탁상공론이었다. 배고픈 사람도 배가 고프다고 해서는 돈을 빌리지 못했고, 전주 역시 장사한다는 말을-거짓말을-들어야 돈을 꾸어주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 이후의 가톨릭 '경제 신학'은 이렇게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종교개혁을 맞았다. 여기서 나도 그만 헷갈린다. 이자는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악이므로 한층 엄격하게 막아야 했는지, 아니면 이미 되돌리기 힘든 현실이므로 순순히 풀어야 했는지…. 역사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칼빈은 이런 개신교 윤리에서 자본주의의 정신을 찾았다. 하느님 백으로 막으려던 것을 세속의 타산이 터놓은 것이다. 그러나 2002년 한국의 사채 시장에도 그런 경험이 온당한지는 적이 의문이다. 단순히 이자를 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칼빈마저 졸도할 연리 1백20%의 이자를 무느냐 마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자에 국회를 통과한 대부업 법률에 따르면 3천만원 이하의 사채 이율은 70%로 제한된다. 정부는 최고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고, 사채업자들은 지하 영업이나 폐업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시대의 조류로 따지면 규제는 악이고 방임은 선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임이 좋아도 절도(節度)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도둑에게 절도(竊盜)의 권리마저 허용할 수는 없지 않는가?1백20%의 금리는 이미 이자가 아니고 절도에 해당하며, 2백% 이상의 '살인 금리'에는 어떤 죄목도 모자란다. 금리 규제의 필요를 십분 인정하면서도 선뜻 강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 즉 급전 차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단돈 얼마만 구하면 가족의 수술비를 대고, 신용 불량자로 몰리지 않고, 가게 문을 닫지 않아도 되는데…그 억울한 사연들을 어찌 다 이르랴. 바로 이런 '함정'을 볼모로 사채업자들이 활개치는 것이다. 국회가 법을 만들고 정부 단속이 날고 뛰어도 채무자의 숨통을 우리가 쥐고 있는데 너희가 어쩌랴 하는 배짱 말이다. 굳이 영세민 보호의 명분을 앞세우지 않더라도 이런 횡포는 엄히 눌러야 한다.

그러나 돈보다 먼저 생긴 이자를 무슨 '소탕 작전'으로 도려내기는 어렵다. 1972년 8·3조치라는 군사 정부의 주먹으로 사채를 동결한 적도 있고, 단자(短資)회사 설립을 당근으로 내밀며 사채 양성화를 유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채는 독버섯처럼 다시 살아났다. 당국의 추산에 잡힌 사채만도 80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15%에 이르고, 2백30만 신용 불량자 대부분이 사채를 썼거나 앞으로 써야 할 형편이란다. 전달 빚을 이 달 수입으로 갚고, 이 달 빚을 다음달 수입으로 막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꿈을 수도 없이 꾸었을 것이다. 누가 이 빚을 한번만 갚아준다면 이 지긋지긋한 빚의 사슬을 벗어버릴 텐데 하는 간절한 소원 말이다.

이 철없는 꿈에서 얻을 것이 있다. 그 하나는 정상 수입이 있을 경우 능력에 맞춰 상환 기일을 늘려주는 '개인 워크아웃' 시도다. 누가 대신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갚도록 숨길을 터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래도 멋대로 쓰다가 다시 올가미에 걸리면 신용 사회로의 복귀가 어렵도록-사실상 사회 매장이 되도록-혹독하게 책임을 묻는 일이다. 툭하면 꺼내는 신용 불량자에 대한 선심성 사면 따위는 가급적 줄이고 또 그 옥석을 가려야 옳다. 10월 대부업법 시행은 급전 융통의 걱정 속에서도 몇몇 긍정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 사채 금리 인하에 따른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상호저축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내릴 전망이다. 그리고 9월로 다가온 대출 정보 공유를 겨냥한 신용카드 업계의 대비인데, 일례로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대출 신청에서 입금까지 45초가 걸린다는 '카드 론'의 열린 서비스는 고리 사채의 견제구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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