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늪 갈수록 깊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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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해 말 하이닉스반도체에 돈을 빌려 준 조흥·우리·외환은행 등이 울상을 짓고 있다. 현재 하이닉스반도체 구조조정 방안을 만들고 있는 도이체방크가 조만간 대규모 부채 탕감 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져 지난해 지원한 신규자금마저 떼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채권액의 70% 안팎을 탕감해 주는 대신 신규자금을 한 푼도 대지 않은 국민·신한·한미·하나·기업 등 채권면제 은행들은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 회의에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다"며 홀가분해 하고 있다. 이들은 탕감해주고 남은 29%의 채권을 전환사채로 바꿔 보유하다 주식전환이 허용된 지난 6월 주식을 거의 다 팔아치웠다.

일부 은행은 주식전환을 신청한 뒤 전환가 7백8원에도 못미치는 2백~4백원대에서 공매도까지 해가며 하이닉스 주식을 내던졌다. 이에 따라 채권 면제 은행들은 하이닉스 대출 원금의 10%선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하이닉스 총 여신이 3천9백60억원이었던 신한은행의 경우 2천7백7억원을 탕감해주고 1천2백53억원을 출자로 전환했다. 주식을 팔아 6백27억원을 회수해 회수율은 15.8%를 기록했다.

국민은행 최범수 부행장은 "하이닉스 여신을 털어버리면서 은행 주가가 크게 올랐으므로 은행 입장에서는 순이익을 몇천억원 낸 것보다 나은 결정인 셈"이라고 말했다.

신규자금을 댄 은행들이 얼마나 손실을 입을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보유채권 가운데 얼마를 탕감해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의 경우 지난해 10월 말 채무조정 당시 7천3백28억원의 하이닉스 채권 가운데 4천2백35억원어치를 전환사채(CB)로 전환하고 1천2백38억원을 더 빌려줘 4천3백31억원어치가 남았다.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떨어져 지금은 원화 표시 채권액이 이보다 다소 줄어든 4천1백여억원에 달하고 있다. 채권단이 하이닉스의 채무를 추가로 조정해준다면 채권액의 절반 정도가 날아가고 내년부터 팔 수 있는 전환 주식 수도 감자(減資)가 단행되면 크게 줄어들어 회수 금액이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상당수 은행이 올해 말까지 1백% 떼일 것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조흥·우리·외환은행 등이 올해 순이익이 줄어들게 된다. 이 경우 주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이닉스 구조조정 보고서에 담길 내용=도이체방크는 이르면 23일 채권단·하이닉스와 실무 협의를 거쳐 만든 하이닉스 구조조정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구조조정특별위원회를 소집해 도이체방크의 구조조정 방안을 설명하고 최종안을 확정하기 위한 협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이체방크는 ▶독자생존▶매각▶사업분할▶청산 등 여러 처리방식과 반도체 가격 등 사업변수들을 조합해 각각의 가치를 산정했고, 이를 기초로 독자생존을 하든 매각하든 거쳐야 하는 채무조정 과정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출자전환을 포함한 채무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여러 채무감면 방안의 조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채무조정에는 ▶출자전환▶이자감면▶만기연장▶원금탕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일부에선 도이체방크가 하이닉스의 금융기관 부채 4조9천억원 중 담보가 없는 3조9천억원의 절반 수준인 2조원 가량을 탕감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이 경우 대손충담금을 45~80% 수준으로 쌓은 은행권보다 대비가 미흡한 투신권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 채권금융기관간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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