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에 한반도旗라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이 부산 아시안게임 개·폐막식 때 남북한 선수단의 한반도기 사용을 제의해 정부가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민족 화해·협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것과 아시안게임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의 주최국으로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하는 국가적 책무는 별개의 것이다. 그런데도 한반도기를 제의한 북측 제안을 우리 정부가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고 검토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아시안게임은 30억 아시아인이 체제와 이념·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화합과 단결·협력을 전세계에 과시하는 스포츠 대제전이다. 한국은 이 대회 주최국으로서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공동 번영의 정신이 구현될 축제를 만들어낼 책임을 지고 있다. 때문에 인공기 문제를 다루는 대원칙은 국제 스포츠계의 관례와 원칙을 따르는 것이며 일정 부분에 대해 남북한의 특수 현실을 감안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시안게임 경기장과 선수촌 등 국제 지대에 인공기와 북한 국가(國歌)의 사용을 허용하자는 원칙에 동의하는 것은 이런 국제주의적 원칙을 준수하자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북한 서포터스를 구성하는 일이나 북한 대표단·응원단에 대한 특별한 물심양면적 지원 등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민족 화해·협력의 확대에 대한 희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에 중계될 개·폐막식 행사에서 주최국인 한국이 태극기를 포기하고 한반도기를 들고 북한과 동시 입장한다는 것은 이런 국제주의적 원칙을 포기하는 일이며 아시아인의 스포츠 제전을 한반도의 특정한 정치적 이슈로 얽어매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남북 화해의 성의를 담아 인공기를 제한적으로 게양하자는 우리 측 제안에 대해 북측이 오히려 한반도기 사용을 내세운다면 이는 남측의 성의와 국제적 관행을 무시하는 독단적 견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더 이상 협의할 대상이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