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지 영화'로 亞시장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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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일색인 여름 극장가에 이색적인 기획 영화 한 편이 걸린다. 23일 개봉하는 옴니버스 공포영화 '쓰리'다. '쓰리'는 제목처럼 '조용한 가족''반칙왕'의 김지운, '첨밀밀'의 천커신(陳可辛), 그리고 '잔다라'의 논지 니미부트르 등 각기 코미디·멜로·에로 장르에서 한가닥씩 한다는 한국·홍콩·태국의 스타 감독 세명을 한 자리에 모은, 축구로 따지면 '아시아 올스타팀'이다. 3국 공동대표팀의 당면 목표는 하나, 영화흥행의 '동남아 프로 리그'에서 우승하겠다는 것이다.

3인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쓰리'를 들여다보니 과연 '본격적인 의미의 아시아 합작영화 1호'라는 수식어가 무색치 않다. 3국의 프로듀서들이 공동으로 기획했고 제작·투자·배급은 각자 진행했다. 각국의 제작 시스템이 갖고 있는 장점은 철저히 공유했다. 예컨대 포스터와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은 한국이, 녹음·현상 등 후반 작업은 태국이, 해외 세일즈와 프로모션의 총괄 지휘는 홍콩이 담당하는 식이다.

'쓰리'의 한국 측 프로듀서인 영화사 봄의 오정완(38)대표를 만나 이 야심만만한 기획상품의 탄생 과정을 들어봤다. '쓰리'는 지난 7월 태국에서 개봉해 태국 영화사상 흥행 3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지난주 첫 선을 뵌 홍콩에서는 벌써 불법복제판이 돌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동남아 합작 1호'는 어떻게 출발했나.

"평소 친분이 있던 천커신 감독이 옴니버스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작했다. 태국 프로듀서도 천커신이 끌어들였다. 세 나라의 영화시장이 최근 질적·양적인 성장을 했지만 협소한 시장 탓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3국 제작자의 이해가 일치했다. 간단히 말해 3국의 주류 영화시장을 뚫어보자는 게 우리의 욕심이었다. 자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상업영화 감독을 교두보 삼아 나머지 두 나라 작품의 동반상승 효과를 노렸다. 가령 홍콩에서 최근 '엽기적인 그녀'나 '조폭 마누라'가 성공하긴 했지만 한국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스타 감독이자 제작자인 천커신의 명성을 이용한다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공포영화는 국적을 불문하고 다수의 환영을 받는 장르다. 또 세 감독은 각기 코미디·멜로·에로 라는 '전공'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장기와 전혀 다른 공포물에 도전한다는 벤처 정신이 새롭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은 그 변신을 받아들일 만큼 열려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의 파트너로 일본과 대만을 빼놓은 이유가 궁금하다.

"대만은 자국 영화시장이 지나치게 침체돼 있다. 일본은 우리가 원하는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뉴 웨이브'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얼굴이 없었다."

그는 3국 제작진의 '휴먼 네트워크' 못지 않게 한국의 팀 워크도 끈끈했다고 자랑했다. 가령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에 출연한 김혜수·정보석 두 배우는 10분의 1이라는 파격적인 수준으로 출연료를 낮췄는데도 "예산이 7억원인데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느냐"며 오히려 걱정할 정도로 이해심을 발휘했다고. 특히 김혜수는 여배우라면 꺼려할 공포영화 연기에 대해 무척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역시 김혜수는 프로"라는 감탄을 자아냈다고 그는 전했다.

포장 잘하면 세계무대 진출가능

-합작 과정에서 가장 난항을 겪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3국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힘들었다. 주로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격론을 벌였다. 영화의 분량에서부터 개봉 날짜까지 의논하느라 해외 출장만 열다섯번을 다녀왔다."

-통상적인 옴니버스 영화와 달리 세 편을 관통하는 주제가 없어 집중력이 다소 떨어진다.

"인정한다. '30~40분 분량의 공포영화로 한다'는 기본 사항만 합의하고 출발했다. 프로듀서 한명이 관리했다면 공통된 주제로 만드는 게 가능했겠지만 각국 프로듀서의 파워가 균등한 상황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았다. 세 편의 수준이 고르지 않은 점도 눈에 띌 것이다. 다음에는 기획 부분을 좀더 강화할 생각이다."

-합작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아시아 국가들이 일견 대동소이한 것 같지만 문화적 배경과 개성은 전혀 다르다는 인식을 얻은 것이 값지다. 각국의 개성을 잘 요리해 상업성 있게 포장한다면 비단 동남아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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