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돕기 나선 '봉사 화가' '사랑의 일기'재단 설립기금 모금하는 김영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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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96년 미국 LA 카운티에서 감사패 받음'.

오는 21~27일 백상기념관에서 전시회를 여는 '봉사하는 화가' 김영세(金英世·32·여)씨. 그의 이력서에는 미국 유학시절 흑인 노인들을 위해 그림 봉사를 하고 받았던 소박한 감사패가 미전(美展) 수상 경력보다 앞줄에 적혀 있다.

"그 어떤 경력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제 그림으로 한·흑(韓·黑) 화합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어요."

그가 94년 홍익대 섬유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유학갔던 당시, 미국엔 92년 LA폭동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다. 한국인과 흑인 사이는 여전히 서먹했다.

그는 유난히 그림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을 위해 흑인노인복지센터에 그림을 기증해 줄 한국인을 찾는다는 주 정부의 말에 선뜻 응했다.

"정말 기뻐하시는 흑인 할머니들을 보면서 저의 그림관이 바뀌었어요. 작가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그림으로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죠."

'전시(展示) 화가'가 아니라 '봉사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미국생활 3년은 지역사회의 노인과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그림을 그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대학 시절 날선 도시와 인물로 채워지던 화폭이 평화롭게 변하고, 그림선도 부드러워졌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봉사하는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료로 배포하는 달력과 일기장에 우리 정서가 어린 풍경을 담는 일을 개인전보다 앞세웠다.

이번에 여는 '김영세 그림전'도 어린이 인성교육을 위한 '사랑의 일기' 재단의 설립 기금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려고 마련한 것이다. 8월 말로 예정된 미국 개인전도 이를 위해 취소했다. 개인전 때와는 달리 소책자도 인쇄했다.

"제가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해요. 흑인노인복지센터의 사회복지사 '재키 할머니'는 언제나 당당하게 기부를 요청하고 다니셨죠. '당신은 날 만나서 정말 행운이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줬으니 절대 놓치지 말라'고요."

그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22점은 돌가루 그림이다. 우리나라의 하늘·새·산·꽃·나무가 거칠한 돌가루의 자연스러운 질감 속에 부드럽게 녹아 있다.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고,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게 여기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미소가 평화로웠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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