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힘든 당신 … 이런 말에 속지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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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취업.투자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취업난을 틈타 허위.과장 구인광고로 구직자를 울리거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유혹한 뒤 거액을 떼먹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사기 수법도 갈수록 다양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몰고 온 우울한 사회 풍속도다.

*** "고임금"… 구직자 42% "사기 경험"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인터넷업체에 입사한 이모(24)씨는 출근 후 한달간 컴퓨터 대신 전화기만 붙들고 있어야 했다. 회사는 웹마스터로 채용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떨어진 업무는 전화로 물건을 팔고 회원을 유치하는 일이었다. 그는 "입사하면 누구나 전화 업무부터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버텼지만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취업사기'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무역학을 전공한 박모(28)씨는 '○○기업, 사무관리직, 연봉 3000만원'이란 채용광고에 마음이 끌렸다. 조건이 너무 좋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 회사는 입사 조건으로 물품 구매를 요구하는 다단계 회사였다.

허위.과장 구인광고가 구직자들을 울리고 있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처럼 광고를 내고 물건을 판매하거나 수강생을 모집하는가 하면 '월 수백만원 보장'이나 '능력에 따라 연 1800만~3000만원 가능' 등 근거 없이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구인 공고가 적지 않다.

인터넷 취업정보업체인 잡링크(www.joblink.co.kr)가 구직자 185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 설문 조사한 결과 779명(41.9%)이 "구직활동 중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앞의 이씨의 경우처럼 '근로조건의 허위.과장'으로 인한 피해가 41.8%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다단계나 영업 강요(25.1%)▶학원수강 등 조건 제시(19.2%)▶취업 알선비나 교재비 등 금품 요구(12.3%) 등의 차례였다.

그러나 피해자의 일부(12.6%)만 해당 노동 당국에 피해를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절반 이상(56.1%)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으며, 일부(17.5%)는 해당사에 항의하는데 그쳤다. 잡링크 이인희 팀장은 "고임금을 보장하는 구인광고는 다단계 판매회사일 가능성이 크며, 면접할 때 회사나 업무의 장점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경우도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 "고수익"… 불법금융 181곳 적발

서울에 사는 김모씨는 지난해 9월 한 물품판매업체가 생활정보지에 낸 광고를 보고 2200만원을 투자했다가 절반 이상을 날렸다. 이 업체는 한 대당 1100만원짜리 경마스크린에 투자하면 한달에 600만원씩 두달에 걸쳐 12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이후 4개월간 월 10%의 수익을 추가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저금리에 돈 굴릴 곳이 마땅찮았던 김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2200만원을 투자하자 회사 측은 한달치 돈을 보낸 뒤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유혹해 돈을 떼먹는 불법 금융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이 같은 불법 유사수신업체 181곳을 적발해 경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했다고 4일 밝혔다. 2003년보다 36%, 2000년보다는 네배 이상 늘어났다. 유인 수법도 과거보다 정교해지고 있다. 먼저 서울 강남에 그럴 듯한 사무실을 개설한다. 시중에 떠도는 돈이 많은 데다 지방에 사는 투자자에게도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지난 2년간 적발된 불법업체 314곳 중 절반에 가까운 153개가 서울 강남.서초구에 자리잡고 있었다.

화려한 이벤트나 특허를 강조해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서울 H사는 세계 최초의 실용신안 특허제품인 유산소 운동 침대자판기를 개발했다며 투자자들에게 100% 수익률을 약속했지만 기계값 385만원씩을 받곤 사라졌다. 생활용품을 판매한다는 서울 A사는 변호사 공증까지 내세우며, 경북 H사는 연예인을 등장시킨 호텔 사업설명회로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연락을 끊었다.

불법 업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예 일수형 원금회수를 내세우는 곳도 적지 않다. 첨단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판매한다는 서울 O사는 1계좌당 110만원을 투자하면 일주일 뒤부터 매일 1만5000원씩 6개월여 만에 22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해놓곤 종적을 감췄다. 금감원 조성목 비은행금융조사팀장은 "금감원 홈페이지의 제도권 금융기관 조회시스템(http://www.fss.or.kr/kor/nav/framecheck.jsp)을 이용, 불법 자금모집업체인지를 확인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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