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바람에 밀리는 이태백 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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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당(唐)나라 때 시인 이태백(太白·701~762)의 별명은 적선(謫仙)이다.'하늘에서 쫓겨난 신선'이란 뜻이다.

별명대로 그의 생애는 호방하고 거침없었다. 당 현종(玄宗) 앞에서 시를 지을 때 당대 권력자 고력사(高力士)에게 신발을 벗기게 했고, 황제의 애첩 양귀비(楊貴妃)에게 벼루를 받쳐들게 했을 정도였다. 죽음을 앞둔 이태백은 청산이 있는 안후이(安徽)성 당투(當·지도)에서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청산은 태백이 가장 좋아했던 시인 사조(謝)가 지냈던 곳이다. 태백 본인도 생전에 일곱 차례나 이곳을 찾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요즘 당투에 있는 그의 묘역이 시끄럽다. 난징(南京)과 우후(蕪湖)를 잇는 고속도로가 바로 이곳을 지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의 묘는 청산(靑山)과 헤어질 뿐 아니라 자동차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게 될 전망이다.

당초엔 '이태백의 묘를 고속도로가 깔고 지나간다더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아 중국 문화계 인사들이 당국에 진상을 알아보는 소동이 빚어졌다.

대답은 "묘역은 그대로 보존하되 청산과 묘역 사이에 길을 뚫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정부 측은 "어쨌든 묘소를 보존키로 했으면 된 것 아니냐"는 태도지만 문화계는 "청산과 태백의 묘를 나누는 것은 중원(中原)과 장강(長江)을 가르는 것과 같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래도 공사는 강행될 예정이다. 아직은 '개발 우선,보존 뒷전'이기 때문이다.싼샤(三峽)댐 하나를 쌓으려면 역사유적 수백개가 물에 잠긴다. 베이징(北京)의 성벽·옛거리·전통시장 상당수도 이런 개발바람에 밀려 스러져갔다. 옛것이 비워진 땅에 반짝거리는 빌딩과 매끈한 길이 들어선다. 시안(西安)·청두(成都) 등 역사로 먹고 사는 도시들도 형편은 같다.

윈난(雲南)성 북쪽 끝단에 리장(江)이라는 도시가 있다.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된 옛 도시(古城)에서 주민들이 옛날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밀려든다.

주변에 있는 옛것은 다 부숴버리고, 한 곳에 모아 놓은 옛것은 돈주고 보는 일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이런 일이 과연 중국만의 풍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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