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국내 첫 배첩전수관 연 홍종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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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화 등을 보존 처리해 액자나 족자로 만드는 배첩(褙帖)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국내 최초의 배첩전수교육관이 한 장인(匠人)에 의해 최근 충북 청주에 문을 열었다. 홍종진(55.동신당표구사 대표)씨.

일반인들에게는 일본식 용어인 표구로 더 알려져 있는 배첩을 올해로 39년째 해 온 그는 자신이 땅을 기증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국비와 시비 지원을 받아 지난해 12월 28일 연면적 436㎡의 전수관을 개관했다.

그는 이곳에서 시연과 체험 행사를 열어 배첩을 홍보하고 전수생을 받아 후진 양성에 전념할 계획이다. 개관 직후 충북대가 미술교육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1년 과정의 위탁교육을 의뢰해왔고, 홍익대도 교습을 문의해왔다. 5년 전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배첩장)로 지정된 그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02호로, 배첩장 김표영(82) 선생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현역 배첩 기능보유자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첩일을 배웠다. 풀을 이용해 서화나 수예품 뒷면에 한지를 붙이는 배첩 일부터 제본이나 병풍, 액자 제작을 위한 목공 일까지 꼼꼼히 익혔다. 김표영 선생을 3년간 사사했다. 지금까지 괘불이나 탱화 등 600여점의 문화재를 보수 또는 복원했다.

"문화재를 복원할 땐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합니다. 다 끝나면 문화재의 생명을 연장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집니다."

200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배첩이 나오기 위한 3요소로 그는 좋은 풀과 재료, 기술을 꼽는다. 그 중에 으뜸은 풀이라고 한다. 그는 10년 삭힌 것을 쓰는데, 그래야 접착력이 강하고 작품 훼손이 덜하며 좀벌레가 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런 풀이라야 수백년 후에도 따뜻한 물로 적시면 바로 분리돼 보수가 쉽다고 한다. 질 좋은 전통 한지를 골라 쓰는 일도 작품 보존성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홍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평생 풀칠로 먹고 살면서 명예까지 얻었다"며 "이제 남은 꿈은 믿을 만한 제자 한두명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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