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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림 현상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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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주 대전에서 열린 아시아 콘퍼런스 만찬 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초 연설 원고에는 “IMF가 구조조정을 많이 강조한 탓에 ‘I am Fired’(나는 해고됐다)라고도 불렸다”는 표현이 들어있었지만 연설에선 빠졌다. 너무 강한 표현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대한 IMF의 처방이 가혹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당시 IMF 처방을 비판하는 데 치우치다가 그 공과(功過)를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에서 물러나면서 이런 퇴임사를 남겼다. “IMF가 축복인지 저주인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IMF 정책 프로그램은 우리가 추진하려다 못한 것들이다. 외세에 밀려 추진하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외부의 충격은 새로운 발전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IMF가 당시 처방을 ‘사과’했다는 보도도 곱씹어볼 만하다. 사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당시 IMF 구제책이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필요보다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는 교훈을 배웠다”는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모두 솔직해지자”며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IMF 처방은 많은 아시아국가에서 성과가 있었으며 한국 등이 이번 금융위기를 잘 견뎌낸 것도 그 덕분”이라는 말도 했다. 이걸 꼭 ‘사과’나 ‘사죄’로 받아들여야 직성이 풀린다면 어쩔 수 없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IMF를 아플 때 부르는 의사에 비유했다. “술병 난 사람에게 술 끊으라고 하면 다 싫어한다”는 말로 IMF 처방의 인기 없음을 설명했다. 지난주 대전에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IMF의 처방을 ‘나 홀로’ 감쌌다고 구설에 올랐지만 그의 발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인기 없는 말’을 한 것뿐이다.

조만간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모양이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의 실태를 전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재정부 당국자가 “언론의 쏠림 현상 때문에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펴는 데 애로가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정부가 그동안 성역처럼 여기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안까지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면 시장 상황이 과거보다 나빠진 게 분명하다. 실수요자의 주택 거래를 더 쉽게 만들어 부동산 시장의 연(軟)착륙을 유도하되, 정부가 기존에 고수하던 원칙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특히 화끈한 대책을 요구하는 시장의 요구나 재·보선을 앞두고 표 계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 휘둘리지 말고 적절히 균형을 잡았으면 한다. 강만수 위원장은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외환위기 당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이렇게 토로했다. “실패한 경제관료 뒤에는 실패한 정치인이 있었다. 정치가 안 되면 경제가 안 된다는 것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