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속에 스민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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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강형구(48)씨는 집요하게 사람 얼굴을 그려온 화가다. 지난 해 들어서야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유명인사들의 대형 초상화전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만큼 초지일관 초상화에 매달려 왔다.

그는 그 얼굴들로 우리 사회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한 인간이 삶에서 누리고 느낀 모든 것이 얼굴 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여는 두 번째 개인전을 작가는 자화상으로 채웠다. 화가의 얼굴을 1백20호에서 1천호에 이르는 거대한 캔버스에 터럭 한올, 땀 구멍 하나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젊은 시절의 강씨 초상은 물론 죽은 직후의 모습까지 자신의 일대기를 자화상 연작으로 꾸몄다. 그가 좋아하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풍도 있고, 눈물이 그렁한 슬픈 얼굴도 보인다.

강씨는 이 자화상들이 "나라는 고유명사를 그린 것이 아니고 '남들과 같이 존재하는 나'라는 대명사를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게 뜬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 작가를 대면하노라면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기능을 미술평론가 김영호씨는 "결국 화가 자신과의 소통을 실행하는 방식이자 타자와 타자 사이를 연결하는 소통의 방식"이라고 보았다. "화가의 자화상은 시대의 자화상으로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응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씨는 "앞으로 자기 얼굴을 소재로 세계의 위인들을 그려넣은 대형 집단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초상화 작업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전시회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경기도 분당 삼성플라자 갤러리로 자리를 옮겨간다. 02-399-1671.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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