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파는'불공정'男 농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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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서장훈·현주엽에게 연봉 이외에 수십억원대의 돈을 줬다"는 프로농구 SK 나이츠의 고해성사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프로농구계 관행으로 굳어지던 뒷돈 거래를 청산할 시금석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장훈과 재계약 실패 직후 공개한 모양새는 얄궂다.

혹시 '못먹는 밥에 재 뿌리자'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SK 단장은 "재계약 실패가 오히려 속 편하다. 서장훈 측에서 자꾸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데려가는 팀은 고생 좀 할 것"이라고 다른 단장들에게 은근히 경고했다고 하니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삼성 썬더스도 이상민(KCC 이지스)과 사전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상민을 데려온다는 것은 포지션이 겹치는 '미스터 썬더스' 주희정을 내보내겠다는 뜻이다.

삼성은 "주희정이 다른 구단과 사전 접촉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봉과 뒷돈을 합해 5억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이상민과 얘기했고 단장에게 보고했을 만큼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해명은 궁색하다.

KCC도 샐러리캡을 맞추기 위해 정재근에게 연봉 이외에 5천만원 이상을 지급한 의혹이 있다. KCC는 부인하고, 다른 구단에서는 "지난해 잘 뛰어 돈을 더 줘야 할 선수의 연봉을 5천만원 깎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정재근의 계좌 추적을 해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구단들은 서로 "다른 팀에서 우리 선수에게 바람을 넣는다" "선수들이 돈만 밝힌다"며 "농구계가 공멸할 위기"라고 한탄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규정도, 샐러리캡도 구단들이 정한 것이고 선수에게 뒷돈을 준 것도, 뒷돈을 줄테니 오라고 유혹한 것도 이들 구단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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