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글로벌스탠더드로가자:<1>정치자금 입출금 공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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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당의 정치자금 집행이 너무 엉망이다."

각 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2001년 정치자금 지출 명세서를 검토한 공인회계사들은 한결같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각 정당들은 중앙선관위에 지출 내역 증빙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서 주요 당직자의 서명만으로 수천만원 내지 수억원을 집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고보조금·당비·후원금 등으로 조성된 중앙당의 정치자금이 '당 총재나 지도부의 쌈짓돈'처럼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각 정당이 지출한 국고보조금 2백67억원의 58%가 세법상 인정되지 않는 증빙자료로 제출됐다"고 밝혔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낸 돈을 정책개발비 지출 항목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재 한국 정당의 수준이다.

상당수 국회의원도 후원금의 절반 이하만 공식 후원금으로 신고한다고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후원금 총액만 보고하게 돼 있어 후원자와 후원금 내역을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리무중 정당 회계=본지 취재팀이 선관위에 제출된 각 당의 지난해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실사한 결과 ▶허위 영수증 작성▶정책활동비 부풀리기▶엉터리 회계가 상당수 드러났다. 자민련은 지난해 3~7월에 당시 총재권한대행이었던 김종호(金宗鎬)의원의 판공비로 2억원을 지급했다며 총무국장 명의의 수령증을 첨부해 신고했다. 그러나 金의원은 "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또 명예총재실과 총재실은 서울 용산구 Y식품점에서 오찬용 포도주와 수입 양주 등 5백여만원어치를 구입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식품점 주인은 "와인이나 양주를 팔지 않고, 총재댁 비서가 빈 영수증을 달라고 해 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국고보조금 중 정책활동비 명목으로 사무처 직원 3백33명(2001년 12월 현재)의 94%에 해당하는 3백14명에게 24억8백만원을 지급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실사 결과 이들 중에는 총무국의 경비·통신 담당자나 총재실 여비서 등 정책활동과는 거리가 먼 직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4일 당사에 출입하는 정보과 형사 6명에게 1인당 20만~30만원씩 모두 1백70만원을 지급했다고 신고했다. 대변인실은 지난해 1월과 9월 특별홍보비 명목으로 각각 1억8천9백40만원과 2억5천5백만원을 대변인에게 지급했다고 했지만 지난해 1월 당시 대변인이었던 김영환(金榮煥)의원은 "그렇게 큰 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상임집행위원장은 "회계 보고 때 정당이 마음대로 공인회계사를 선임할 게 아니라 중앙선관위가 지정한 공인회계사에게서 회계 감사를 받도록 하고, 국고보조금 지출은 선관위에 신고된 계좌를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무리 퍼부어도 부족한 선거자금=6·13 지방선거 때 서울에서 구청장 선거에 나섰다 낙선한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법정 선거비용은 1억원 가량이었지만 10배 정도 썼다"며 "웬만한 돈은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10여개 동(洞)의 구의원·동책임자·사조직 등 3백여명에 대한 하루 인건비만 2천만~3천만원 들었다"고 했다.

지난 5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대략 10억~30억원의 선거비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의 대의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데만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는 것이다.

정치권 부패의 한복판에는 이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선거자금이 버티고 있다.

선거비용 현실화와 함께 선거공영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河勝彰)사무처장은 "완전공영제 추진 이전에 정당의 세금 낭비를 막을 방안을 분명히 마련한다면 설령 국민 부담이 조금 늘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부=이하경·최상연·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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