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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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학교 교실에서 내가 처음 느꼈던 것은 '변두리'적인 자의식이었다. 모아놓은 녀석들을 보니 모두 서울시내의 그럴싸한 학교에서 공부도 나보다 더 잘하고 집도 훨씬 부자고 똘망똘망하고 빤지르르하게 잘생긴 놈들이었다. 첫 학기를 지나자마자 기가 죽어버렸는데 성적을 보니 나는 중간쯤에 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녀석들 틈에 묻혀버렸다. 재담꾼이 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아이들을 웃기기 시작했고 재미있는 익살을 만들어내려고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기도 했다. 내가 결석한 이튿날 학교에 가면 녀석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제 네가 없으니까 교실이 썰렁하더라. 그렇지만 교실의 광대는 언제나 위험하다. 자기를 끊임없이 계발해서 더욱 새로운 익살거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어느 틈에 급전직하 시시한 놈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너그럽게 웃어는 주지만 익살꾼은 집단에서 주요한 배역은 아니다. 그의 외로움은 수시로 무시당한다.

거웃이 자라나고 목소리가 변하면서 나는 사내가 되기를 열망했다. 내가 사나이를 꿈꾸었다는 것은 내가 홀어머니의 자식이 아니라 스스로 아버지가 되겠다는 소망이기도 했다. 자기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몇 마디의 말이나 단어 몇개로 돌려서 얘기하고 통할 수 있는 내면이 단단한 남자 어른.

전후의 정신없던 복구 시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출판이 활발하게 진행됐고 전집류에서 문고판에 이르기까지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야시장의 서가에 꽂힌 대여 도서를 보던 때에서 이제는 책을 골라 사모으며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류도 여러 종류가 나왔고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중구난방이기는 했지만 동서양의 고전들이 출판되었다. 잡지도 이것저것 사보기 시작했다. 월간지로는 학생 문예지인 '학원'이 있었고 순문학지로 '문학예술''현대문학''자유문학' 시사월간지인 '사상계'가 있었다. 연말연시가 되면 문방구에서 두툼한 일기장을 팔았는데 매 페이지의 아래쪽에 그날의 격언이 치기만만하게 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사서 일기는 쓰지 않고 짤막하게 단상을 적어놓거나 시를 썼다. 그러나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일인일기 교육이라고 하여 '특별활동' 시간과 반 편성을 따로 했는데 문학이라든가 글 쓰는 취미를 가진 애들이 들어가는 '문예반'에는 가입하지도 않았다. 나는 오히려 수영반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에도 문예반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고 등산반에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글 쓰기란 저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끼는 것일수록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달이나 꽃을 보면 우선 원고지 잡고 펜을 들어 포즈를 취하는 것 같은 문예반은 목덜미가 근질거려서 도저히 근처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이것은 나중에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글 쓰기와 사는 일이 일치되었으면 싶다는 열망으로 발전했고 '선비'가 아니라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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