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충격이 내 영화의 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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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인도 마드라스 출생 ▶17세 때까지 45편의 단편 영화 제작 ▶뉴욕대 영화 전공 ▶'프레잉 위드 앵거' 1993년 미 영화협회 '올해의 데뷔영화'에 선정됨 ▶'와이드 어웨이크''식스 센스(99년)''언브레이커블(2000년)' 감독

"나에게 로맨스 영화 따위를 기대하지 말라. 갖가지 해프닝을 거쳐 결국 해피엔딩을 하는 식의 전개는 너무 지루할 뿐더러 내 타입도 아니다."

'식스 센스''언브레이커블'에서 충격적인 반전의 묘미를 선사했던 나이트 샤말란(32) 감독이 2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이번에도 전작들처럼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영화 '싸인(Signs)'이다. 새 영화는 외계의 존재에 대항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내를 잃은 뒤 세상과 등지고 사는 그래엄(멜 깁슨)의 농장에 '미스터리 서클'이 나타나면서 혼돈이 시작되고 가족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

8월 9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리젠시 호텔에서 샤말란 감독을 만났다. 편안한 옷차림에 인도풍 목걸이와 팔찌를 두른 그의 모습은 감독이라기보다는 젊은 영화학도 같았다. 그는 특유의 빠른 말투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머를 섞어가며 자신의 영화에 대해 얘기했다.

-유령·초능력자·외계의 존재 등 초자연적 소재를 즐겨 쓰는 것 같다.

"영화는 마지막에 어떤 방법으로든 놀라움을 줘야 한다. 종반에 이르러 관객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끝날까'라는 의문을 들게 한 뒤 기대하지 않았던 결말을 내던지는 식이다. 초자연적인 소재는 이런 면에서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외계의 존재와 '미스터리 서클' 등을 묘사하면서도 컴퓨터그래픽(CG)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요즘 영화는 CG를 남발한다. 최대한 촬영을 해보고 나서 그 다음에 CG를 사용해야 한다. 실제 촬영을 하면 그림이 약간 허술해 보일지는 몰라도 CG보다는 사실적이다. 옥수수 밭에 만들어진 미스터리 서클 또한 많은 인력을 동원해 옥수수대를 직접 꺾어가며 만든 것이다. 공중에서 본 그 광경은 CG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전통적인 제작 기법을 선호한다. 실제로 '식스 센스'에서는 찬 입김이 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방안을 냉동실처럼 차갑게 얼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 '대충 연기하는 톱스타는 필요 없다'며 배우 선정에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멜 깁슨과의 작업은 어땠나.

"나는 배우들에게서 '이런 시나리오라면 출연료 없이도 연기하겠어'라는 눈빛을 보지 못하면 배역을 맡기지도 않는다. 멜 깁슨은 바로 그런 눈빛이었다. 주인공은 강한 의지를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다. 깁슨은 이를 잘 소화해냈다."

-이제 다른 장르에도 눈을 돌릴 때가 되지 않았나.

"최근 '맨인블랙2'를 봤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영화를 만들었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작업했을 것이다. 남들을 웃기기 위해 나는 더욱 괴로워해야 할 것 아닌가. 세배가 넘는 돈을 제시해도 찍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두편의 영화로 일찌감치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뒤 유혹이 많았던 모양이다. 대중의 취향에 맞출 것이냐, 대중의 취향을 이끌 것이냐. 그는 후자 쪽이다.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감독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한다. 돈을 보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영혼을 파는 일이다"라며 자신을 다독거리고 있다. 그러나 거대 자본과 흥행 앞에서 저항하고 싶어하는 이 젊은 청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점점 할리우드의 공식에 순응하는 듯하다. '싸인'에 이르러 결말은 빤히 보이고 악은 선을 이기지 못한다. 샤말란 감독도 이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뉴욕=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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