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심성 사면·복권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8·15 대사면을 건의키로 했다. 구속된 노동자 석방과 전과 노동자, 가벼운 선거법 위반자, 생업에 종사하는 경미한 위법행위자의 사면·복권 등이 건의 대상이며 여러 분야의 대폭적 사면을 건의키로 원칙을 정했다는 것이다.

사면·복권은 정치권력으로 일시에 법의 권능과 효력을 상실시킨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므로 축소·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이 때문에 법치국가일수록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이 정부 출범 후 사면·복권이 지나치게 잦다. 1998년 3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5백50여만명의 특사·행정처분 취소가 있었고 3·1절과 광복절 등에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특사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7월 들어 월드컵 성공 기념 '국민대화합' 명목으로 교통법규 위반자 4백81만여명이 혜택을 받았고 은행에 30만원 미만을 연체한 신용불량자 50만8천여명도 구제됐다.

벌써 시중에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다. 음주운전 등 교통위반 단속 불응 행위 급증과 경찰관 폭행, 파출소 행패 등 공권력 경시 풍조 만연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가 잦은 사면·복권으로 법의 존엄성과 형평성 침해에 앞장섰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더욱이 선거사범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정치권의 후안무치(厚顔無恥)다. 부정선거 사범 엄단은 공명선거를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국민적 합의사항이다. 선거사범을 솜방망이 처벌하는 데 대한 국민 불만을 외면한 채 오히려 선거사범의 사면·복권을 건의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면·복권이 민심의 지지나 선거 득표로 연결되던 시대는 지났다. 아직도 유권자들을 그처럼 어리석게 보고 얕잡아 본다면 착각이다. 선심성 사면·복권은 자칫 집권층에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