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로프스크 시내 곳곳 北노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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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선생님,북조선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습네다."

"일이 힘들지 않으십니까."

"할 만하지요."

17일 오후 9시 하바로프스크 중심가를 걷던 기자 일행은 인투어리스트 호텔 근처에서 도로턱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북한 노동자 네명을 만났다. 이들은 '경계 반, 호기심 반' 눈초리로 우리를 맞았다. 도로 배관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50대 초반의 한 사람은 "이번 월드컵에서 남조선 선수들이 대단했다"고 말을 꺼냈다.

또 다른 북한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지난해에 (평양 통일대축전 때) 임수경이를 직접 만났다"고 했다. 선생(45)이라는 북한인에게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을 찍자"고 하자 "총지도원 동무가 절대 작업복 차림으로 찍지 말라고 했다"며 한사코 마다했다.

북한 노동자는 하바로프스크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친선특급 일행을 태운 버스가 하바로프스크에서 건물 보수·도로 보수·상하수도 공사같은 공사판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마오쩌둥(毛澤東)모자에 칙칙한 인민복을 입은 북한인이 목격됐다. 하바로프스크 철도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인 김중년(金重年·계명대2)군은 "거리나 트람바이(전철)에서 북쪽에서 온 분들을 쉽게 만난다"며 "가끔 저녁 때 시장을 보는 북한 아저씨들과 말도 나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 연해주에는 1만5천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평양의 '달러박스' 구실도 했다. 그러나 98년 러시아 외환 위기 이후 90%가 철수했다.

북한은 올해 4월 조창덕 내각 부총리를 연해주로 보내 북한 노동자 인력 송출 숫자를 1만명 이상 늘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바로프스크 주정부 브야슬라프 디아노프 국제무역부장은 "6백~7백명의 북한 노동자가 이 지역에서 산림과 건설 두 분야의 단순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바로프스크=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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