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통상협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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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늘협상 파문이 말해주듯 우리의 통상협상력은 절망적이다. 현 정권 출범 때 이 역량을 높인다며 장관급을 장(長)으로 하는 통상교섭본부까지 설치했지만 겉만 번드르르 했을 뿐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초래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민주당 김성호 의원의 지적처럼 이같은 현실은 협상 대표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협상 대표의 잦은 교체, 고위직·외교직 중심의 의전형(儀典型) 협상단, 사전조사 부재 결과다. 金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협상 대표가 평균 10개월 만에 교체되는 등 상하없이 인사가 잦았다. 전문성은커녕 협상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인 것이다. 2000년 마늘협상 대표는 협상 전에 요르단 대사로 발령났고, 실무를 맡은 아태통상과의 과장을 포함한 6명의 직원 중 현재 이 과(課)에 남은 직원은 단 한명도 없다. 마늘협상 못지않게 비난의 대상이 됐던 '쌍끌이 어업협상'도 전문성과 외교력 부재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또 당시 책임자 인사조치와 함께 집중감사를 합네, 기능 확대니 어쩌니 했지만 역시 여론 무마용에 불과했다.

어업협상은 해양수산부, 유럽연합(EU)과의 조선협상은 산업자원부, 대외경제 조정은 재정경제부 등으로 대외교섭 주체가 제멋대로 인데다 통상교섭본부는 부처간 업무조정이나 정책입안을 할 권한·능력이 없다. 게다가 잦은 순환인사로 전문성마저 상실했으니 통상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하기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일 터다. 모순투성이 인사정책, 사명감 결여, 정무직 진출에나 관심 쏟는 이름뿐인 통상전문가, 업무 인수인계 소홀 등 통상협상의 무능·무지는 구조적인 것이다.

통상협상력 제고는 국익과 직결된다. 과오에 따른 질타는 맵게 하더라도 독자적인 인사·예산권 없이 의례적 대외창구 역할이나 하는 통상교섭본부를 이대로 둬선 안된다.국익과 산업경쟁력 확보의 전위조직으로서 통상교섭본부가 기능할 수 있는 조직·인원·권한 확대 등을 전면 재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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