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순위 프로그램 공중파에선 폐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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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간에 루머로만 떠돌던 방송 연예계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MBC·SBS의 가요담당 PD들이 검찰에 구속 또는 소환되는 데 이어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져갈 기세다.

그동안 한국에서 방송 출연을 위한 탤런트나 가수들의 뇌물 사건들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일상사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칼날은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 방송·연예 비리가 과연 검찰의 힘으로만 척결할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딱 떨어지는 답은 없어 보인다.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은, 왜 우리 사회에 이러한 방송·연예 비리가 만연하고 있는가다. 설명을 위해 미디어 경제학 이론을 가져와 보자.

한마디로 그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스타를 꿈꾸는 가수·탤런트 지망생은 수두룩한데 이들이 출연할 프로그램은 제한돼 있다. 여기에다 우리 지상파 방송의 중앙집중적 독과점 구조로 인해 비리는 더 가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타로 뜨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지상파 방송 영역에 침투해 자신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비리를 해결할 수 있는 우선적인 방안은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의 시장 진입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과도하게 소유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를 통해 방송·연예 부문까지도 진정한 공·민영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당장 불가능하다면 케이블 방송과 지상파 방송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KBS의 '뮤직뱅크', MBC의 '음악캠프', SBS의 '인기가요'등 많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지상파에서 폐지하고,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1987년 왜곡·편파보도에 대한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미국이나 유럽의 시청자 운동 형태인 'TV 끄기'나 '특정 프로그램 안 보기' 같은 운동이 한국에서도 보편화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셋째로 방송협회 산하에 '방송·연예 비리신고 센터'를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신문협회의 경우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신문공정경쟁위원회를 설치했고, 산하에 독자고충 신고센터를 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언론이 내부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외부 공권력이 개입할 빌미를 줬고, 이를 통해 오히려 정상적인 발전을 해치는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넷째로 방송위원회의 적극적인 노력이다. 이미 방송법은 방송사가 시청자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고, 60분짜리 방송평가 프로그램 편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이 프로그램 평가원들에게 돈까지 지원하고 있는 현실에서 시시콜콜한 내용 규제보다는 원천적으로 방송·연예 비리가 싹트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방송위원회가 천문학적인 규제 비용만 쓰고, 비리와 선정성 등 고질적 문제를 외면한다면 존재의 정당성을 잃게 될 건 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국회 산하에 방송영상산업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국회가 '정치특위'뿐 아니라 21세기 최대 산업의 하나인 방송영상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특위에 방송계·학계·시민단체·법조계·정계가 참여해 KBS2·MBC 등의 민영화를 포함한 방송영상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고 제도와 방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아무튼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방송·연예 문화가 도약하기 위한 시련이 돼야 할 터이다.

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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