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압력설' 철저히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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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퇴임 때 주장했던 '다국적 제약사의 경질 로비'의 정황이 차츰 밝혀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김홍신 의원이 어제 국회에서 공개한 자료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미국 정부의 관련 기관을 총동원, 우리 정부를 상대로 방문 면담에서 협박성 편지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압박을 가했음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장관 인사뿐 아니라 약값 정책이 흔들려 건강보험 재정에 큰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8월 시행할 예정이었던 참조가격제(약의 적정가격 이상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제도)가 미국 측 압력으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또 올 1월 이태복 장관 취임 후 약값 인하정책을 다시 추진하자 미국 측은 약값 관련 실무협의회 참여를 요구해 관철하는 등 계속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지난해 건보 약값은 4조5천억원으로 분업 이전인 1999년에 비해 25% 가량 늘어났다. 의약분업을 해도 약값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 예측이 빗나간 주된 이유는 고가약 처방이 증가했기 때문이고, 이때 가장 재미를 본 것이 오리지널 약을 많이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였다. 오리지널 약은 국내 제약사가 만든 동일 성분의 카피 약에 비해 최고 23배나 비싸다. 지난해 건보 약값 청구금액이 많은 10개 의약품 가운데 8개가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참조가격제 시행 무산으로 1년간 건보 재정이 1천6백여억원의 손실을 보았고 결국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지금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이런 압력설과 제약회사 실태에 대해 국회는 진상조사를 통해 보다 믿을 만한 확실한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 우선 국회가 나서 그동안 미국 측에서 어떤 압력이 있었는지, 이로 인해 정책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로 불합리점이 그대로 드러난 약값 제도 개선을 정부가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그 대안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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